중앙도서관 글쓰기 마일리지 적립은 카피킬러 및 GPT킬러 표절 검사를 통해 검증됩니다.
✅ 표절률 30% 초과 시 마일리지 감점과 3회 이상 시 해당 연도 시상 대상 제외되오니, 성실한 작성 부탁드립니다.
나의 사탄/백은별/위즈덤하우스/2026이 책은 기독교인이던 주인공(소정)이 독서모임에서 만난 여자아이(Y)를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이다. 이 문장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이야기는 기독교인이던 주인공이 동성을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이다. 소정이는 기독교인으로써 Y를 사랑하는 것을 계속 갈등하게 되지만, 결국 지옥으로 떨어지더라도 이게 운명이라면 받아들이겠다는 선택을 하게 된다. 이 모든 것이 어른으로 향하는 과정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다. 운명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말을 보면서 주인공이 어떤 선택을 하든 책임을 질 준비가 되었고, 어른이 되어가는 중이라는 생각을 했다. 작가인터뷰에서 작가님은 주인공을 연약한 사람으로 보셨냐는 질문에 사랑 앞에서는 강해질 필요가 없으니까 라고 말을 하셨는데 그 부분이 이 책을 가장 잘 설명해준다고 생각했다. 왜 늘 사랑과 관련된 이야기를 읽으면 여운이 길게 남을까, 왜 늘 사랑과 관련된 이야기는 사랑을 받을까 생각해보면 결국 이 말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아무리 사랑한다고 해도 싸우면 약해보이지 않으려고 서로 자존심을 세우기 바쁘지만, 사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강하지 않은 거야말로 진짜 강한 사람이 아닐까 생각한다.작가인터뷰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은 자신은 기독교인도 아니고 동성애자도 아니기 때문에, 기독교 박해나 동성애 지지처럼 보이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한 것이다. 그 덕분에 이 책을 읽는 동안 기독교나 동성애가 한 요소처럼 느껴졌고, 편견이 생길만한 부분은 거의 없었다. 자세하지 않아서 아쉬운 부분도 존재했던 책이지만, 전체적인 줄거리나 포근한 분위기가 설레었고 좋았다. 짧은 사랑이야기를 읽고 싶다면 한 번쯤 읽어봐도 괜찮은 책인 것 같다.
9월
코코/리 언크리치/2017<코코>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장면은 망자들의 세계이다. 표면적으로 죽음 이후의 사후 세계를 표현했지만 사후 세계를 표현하는 방식이 너무나 신선한 설정으로 다가왔다. 먼저 망자의 세계인 저승을 가는 과정에서 입국 심사대의 입출국 기준은 가족들이나 인연이 있던 사람이 자신의 사진을 제단에 올려두는 것으로 사진이 없는 영혼들은 출국 허가를 받지 못하고 혹여나 다리를 건너게 되더라도 단 한 발짝도 건널 수 없게 된다. 또한 이승에서 기억해 주는 사람이 단 한 명도 남지 않게 된 망자는 망자의 세계에서도 소멸해 버리는 마지막 죽음을 겪게 된다는 이야기가 가장 인상 깊었다. 영화에서 죽음을 유쾌하게 풀어내어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 이후에 잊혀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말하고자 했다고 생각한다. 이는 이승에 남아 있는 자들에게 죽음 이후 우리가 어떻게 기억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준다. 언젠가 우리 모두 세상을 떠나게 되겠지만 나를 기억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면 나는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우리 집은 매년 설날, 추석, 돌아가신 날에 친할머니의 제사를 지낸다. 지금은 친가와의 시간이 잘 맞지 않고 부모님도 힘들어하셔서 돌아가신 날에만 제사를 지내고 있다. 사실 제사를 지내는 날은 항상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해서 힘들기도 하고 제사를 지낸다고 해도 살아계실 때 해드리는 게 아닌데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솔직히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코코>를 보고 나서는 죽음 이후에도 살아있을 때처럼 잘 모셔야 하고 만약 그렇지 못하더라도 제사는 친할머니를 기억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니 제사를 지내는 것에 대한 작은 불만들도 사라졌다. 어떻게 보면 제사는 돌아가신 분만 위하는 것이 아니라 남아 있는 사람들이 위안을 얻고 잊지 않기 위해 마음을 다잡는 시간이 될 수도 있겠다. 이렇게 <코코>는 죽음보다 기억의 소중함을 일깨워줬고, 언젠가 이 세상을 떠나게 되더라도 누군가의 따뜻하고 좋은 기억 속에 남아 있을 수 있도록 지금의 삶에 충실히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포말
완득이(김려령《완득이》)/이한/2011 <완득이>에 나오는 동주는 완득의 옆 옥탑방에 살고 있는 일반사회교사이자 담임 선생님으로 학생들에게 공부를 강요하지 않으며 자신이 없을 땐 놀고 방학에는 운동하라고 할 만큼 자유로운 성향이다. 완득은 세상과 거리를 두는 학생으로 가정 형편도 좋지 않고 학교에서 제대로 된 생활을 하지 못한다. 특히 영화에서 완득과 동주의 관계를 가장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데 선생인 동주는 학생이 완득의 삶에 끼어들며 바꾸려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완득이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끊임없이 손을 내미는 모습을 보인다. 처음에 완득은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동주를 불편해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이 회피하고 있던 현실과 가족, 자신에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게 해준 것에 대한 약간의 고마움을 느끼기도 한다. 여기서 선생님인 동주는 학생을 ‘바꾸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바꾸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이 매우 인상 깊었다. <완득이>는 학생이라면 당연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되는 공부나 학업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한 명의 사람으로서 자기 자신과 자신의 가족에게 관심을 두고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게 해주는 선생님의 역할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영화를 보고 나서 한 가지 의문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교사는 학생의 삶에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는가? 교사가 학생의 삶에 개입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생각한다. 학생이 원하지 않을 수도 있고 학생이 원한다고 하더라도 원하는 정도를 모른다는 점에서 선생님의 역할은 매우 제한적이며 교사는 학생을 바꿀 수도 없을뿐더러 학생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도 없다는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는 중에도 교사가 학생의 삶에 깊게 개입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난 후에는 교사가 학생의 삶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여 방향을 결정해 주는 것이 아니라 영화의 동주처럼 학생이 스스로 자신의 삶을 개척할 수 있도록 곁에서 손을 내밀어 주는 교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또 학생의 학업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개인적인 삶에 관심을 가지려면 교사와 학생의 관계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어른과 아이, 사람 대 사람으로서 마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사는 학생을 대신하여 살아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학생에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조금은 아름답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스승과 같은 존재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포말
얼굴/연상호/2025 시각장애인 영규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의 아름다움을 갈망하고 자신이 만드는 도장이 아름답다는 타인의 인정과 존경을 받는 것이 삶의 가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평생 차별과 편견을 받아온 영규는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건 추한 것이라 단정하는 왜곡된 생각을 가지게 된다. 영규의 아내인 영희는 평범한 외모를 가지고 있지만 말이 어눌하고 느리다는 이유로 주변 사람들에게 괴물이라고 낙인찍히게 된다. 이런 평가가 아내에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마저 아름답지 못한 존재가 되고 자신을 속였다는 잘못된 판단으로 아내를 죽이게 된다. 영희를 죽인 사람이 정말 영규가 맞을까? 표면적으로 영화에서 영희를 죽인 사람은 영규임은 사실이지만 영규는 본래 누군가를 해치는 악한 사람이 아니었고 시각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제외하면 다른 사람과 비슷하게 평범한 존재이다. 영규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은 자신의 기준이 아니라 사람들의 평가로부터 비롯된 것이며 자신이 직접 보고 판단할 수 없어서 사람들의 평가와 시선이 모든 것의 판단 기준이 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영희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은 영규가 아니라 영희를 괴물이라고 단정하고 끊임없이 낙인을 찍어버린 사람들이 편견과 시선이라고 생각한다. 시각장애인으로 평생을 사람들의 평가 속에서 살아온 영규는 결국 자신의 눈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다. 영규 역시 그 편견의 또 다른 피해자일 지도 모르겠다. 특히 영화의 연출과 마지막 장면이 이 영화가 비판하고자 하는 부분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영화가 끝나기 전까지 영희의 얼굴은 절대 나오지 않은 채 사람들의 비난과 편견만을 듣게 되다 보니 영규의 아들인 동환과 관객은 모두 자연스럽게 영희가 못생겼을 것, 얼굴에 문제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영화 마지막 부분에 너무나 평범하게 생긴 영희의 얼굴 사진을 보여주며 동환이 무너지는 과정과 함께 영화는 끝나게 된다. 이러한 연출을 통해 관객들마저 사람들의 시선과 편견에 자연스럽게 휩쓸리고 무의식적으로 고정관념을 갖게 되는 사실을 깨닫게 만들고 이러한 행동을 비판하고자 한 영화의 의도를 알 수 있었다. <얼굴>은 사소한 편견과 끝없는 소문이 사람을 죽음까지 이어지는 과정을 보여주며 아름다움을 갈망하는 자의 계속되는 욕심을 비판하고 있다. 사실 사람을 처음 만날 때 너무나 당연하다시피 상대방의 얼굴을 보고 예쁘다, 잘생겼다, 멋있다, 아름답다고 판단하고 이런 사람들이면 착하겠지, 대단하겠지, 말도 잘하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사실 나중에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을 때도 많고 누군가를 평가하는 나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 이러한 판단을 멈출 수 없다는 사실에 허무함을 느끼게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겉모습으로 모든 것의 판단이 끝나는 것이 얼마나 잔인하고 무서운 것인지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포말
두근두근 내 인생/김애란/창비/2011“네가 나의 슬픔이라 기쁘다, 나는.”“그러니까 너는, 자라서 꼭 누군가의 슬픔이 되렴.” 『두근두근 내 인생』에 나오는 ‘나’의 부모님이 조로증을 겪는, 삶이 얼마 남지 않은 ‘나’에게 해주는 말이다. 나는 누군가의 행복이 되고 싶다. 나의 부모님과 형제, 친구들이 나로 인해 항상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누군가의 슬픔이 되라는 것이 얼마나 모순된 말일까? 누군가의 슬픔이 된다는 건 어떤 것일까? 슬픔이 되라는 것은 서로가 다시 만나지 못하는 상황에서 나의 부재로 인해 상대방이 슬퍼할 만큼 상대방에게 소중한 사람이 되라는 의미라 생각했다. 어쩌면 누군가의 슬픔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오래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떠난 뒤에도 함께 나눴던 추억과 감정들이 계속해서 살아 움직이고 상대방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생각을 하다 보니 소설의 '나'가 소설을 쓴다는 사실이 인상 깊게 다가왔다. 이 소설은 자신이 나중에 죽게 되었을 때 부모님이 봐줬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쓰기 시작했고, 중간에는 인터넷 친구인 서하를 위해 소설을 완성한 부분이 인상 깊었다. 누군가를 위해 소설을 썼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낭만적이었고 내가 만약 소설의 '나'였다면 무엇을 남기고자 했을지 생각해 봤다. 예전에 학교 선생님과 상담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한 적이 있는데 선생님의 부모님께서 어릴 적에 돌아가시면서 몇십 년이 지난 지금 부모님의 목소리가 기억에서 점점 잊혀간다는 사실이 너무 슬프고 부모님의 목소리가 담긴 오디오나 동영상이 하나도 없어서 어떤 목소리로 선생님을 불러줬는지 이제는 듣지 못하는 게 너무나 힘들다고 하셨다. 그래서 선생님께서 최대한 늦기를 바라지만 만약에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많이 후회할 테니 지금부터라도 부모님의 목소리가 담긴 영상을 많이 남겨두라고 하셨다. 소설을 읽으면서 선생님의 이야기가 계속 생각이 났다. 그래서 나는 나의 목소리가 담긴 동영상을 많이 남겨뒀을 것이다. 소설의 '나'도 이와 비슷한 마음이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소설의 '나'는 조로증으로 인해 예전과는 전혀 다른 목소리를 가지게 되었기에 자신의 목소리와 생각을 간접적으로 잔잔히 기록하는 소설을 선택하여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자신을 가장 아끼고 사랑해 줬던 부모님과 처음으로 자신을 존중해준 서하가 자신을 다시 떠올릴 수 있도록 하고자 했을 것이다. 처음에는 누군가의 슬픔이 되라는 말이 너무나 모순적으로 들렸다. 평소에 나는 누군가의 행복이 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서 다른 생각들을 하게 되었다. 행복은 함께 있을 때 매우 선명하게 느껴지는 감정임은 틀림없지만 슬픔은 그 사람이 떠난 뒤에도 오래 남게 되는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누군가가 나를 떠올리며 슬퍼한다는 것은 내가 상대방에게 그만큼 소중한 존재였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그래서 이제는 나도 누군가의 슬픔이 되는 존재가 되고 싶다. 언젠가 가족들과 친구들과 헤어지는 날이 오겠지만 나를 기억하고 나의 부재를 슬퍼해 줄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내가 누군가에게 행복한 존재였다는 것을 증명해 줄 수 있음을 소설을 통해 알게 되었다.
포말
"무서운 건 악이 아니오. 시간이지. 아무도 그걸 이길 수 없거든."이 소설을 가장 잘 표현한 한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점차 나이를 먹어 30대,40대, 그리고 50대가 될 것이다. 나이를 먹고 싶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는 시간의 흐름을 피할 수는 없다. 그저 받아들여야 할 뿐이다.치매에 대해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 "치매는 죽음으로 가기 전 기억을 잊기 위한 과정일 뿐이다."과연 이 말은 맞는 말인가? 치매는 안타까운 병이라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병이 아닐까?언젠가 나이가 들어 스스로 올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순간이 온다면, 나는 과연 이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게 될까? 아직은 먼 미래의 일이라 그저 안타까워할 뿐이지만 말이다.주인공 김병수는 치매에 걸려 과거도 , 미래도 잃어버린 채 오직 현재만을 기록한다. 노트와 녹음기에 의지해 간신히 현재를 붙잡으며 살아간다. 그런 그가 정작 현재도 기억하지 못하면서,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를 걱정하며 딸 은희의 남자친구를 미행하기 시작한다. '살인범은 살인범을 알아본다.'면서.이 책은 "주인공의 시점은 항상 옳다."는 독자의 편견을 여지없이 깨부순다. 주인공의 시선이 늘 진실일 것이라는 착각은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다. 소설은 텍스트를 읽을 때 끊임없이 의심하고, 생각하고, 스스로 판단해야 함을 일깨워 준다.사실 우리는 일상에서도 많은 사람이 믿거나 널리 알려진 보편적인 사실에 대해 쉽게 의심하지 않는다. 혹시 대중심리에 이끌려 스스로 고정관념을 만들어내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보게 된다. 비록 소설 속 주인공은 치매 환자이지만, 결국 우리 인간 역시 믿고 싶은 대로 믿고,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곤 한다. 작가는 치매라는 극단적인 설정을 통해,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우리 인간의 보편적인 심리를 거울처럼 비춰주고 있다.
연탄
" 진실이요? 백 번 천 번 넘게 말했습니다. 전 아니라고요. 아무도 안 믿더라고요. 그때 깨달은 게 하나 있습니다. 세상은 진실을 듣는 게 아니구나. 세상은 듣고 싶은 대로만 듣는구나."이 문장은 이 책의 주인공인 서은이의 심정을 고스란히 전달해 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이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문장이다.우리는 과연 진실을 제대로 분별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요즘 인터넷이나 SNS를 보면 연예인이나 유명인의 작은 행동 하나에도 대중이 크게 반응하며 일을 키우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당사자의 실제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의미를 왜곡하고 해석하여 마녀사냥을 벌이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과연 우리는 이러한 세상 속에서 진실을 잘 구분하고 있는 걸까? 단편적인 모습 하나만 보고 누군가를 쉽게 단정 짓고 판단하는 태도는 우리가 반드시 고쳐야 할 고정관념이다. 대중은 이미 자기 뜻대로 결론을 내려놓고, 정작 중요한 진실에는 귀를 닫아버리곤 한다.소설 속에 등장하는 주연이 역시 이러한 마녀사냥의 피해자 중 한 명이다. 그동안 주연이가 했던 행동들이 누군가의 눈에 곱지 않게 보였다는 이유로, 사람들은 주연이를 오직 '나쁜 아이'로만 바라본다. 주연이의 실제 의도가 무엇이었는지, 선한 마음이 있었는지는 대중에게 중요하지 않다. 그저 평소 행실만을 꼬투리 잡아 주연이라는 인물 자체를 비난할 뿐이다.결국 이 책의 결말은 '주연이가 진짜 범인인가,아닌가'를 밝히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오직 눈앞의 사건을 해결하기 급급한 우리 사회에 '믿음'의 중요성과 '진실'이라는 단어의 무게감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만약 지금을 살아가는 당신이 주연이와 같은 상황에 부딪친다면 과연 어떻게 반응했을까?
연탄
이 책을 정말 오랜만에 다시 접하게 되었는데 중학교 때 이 책을 읽고 정말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있어 다른 누군가에게도 추천하고 싶어 이렇게 글을 쓴다."우리는 누군가의 들러리가 아니라, 자기 인생이라는 무대의 유일한 주인공이다."이 책은 우리에게 이 말을 전한다. 누군가가 나보다 잘나보이고 잘하는 것 같을 때 나는 과연 그 보다 잘 하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하는데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으면 한다. 나는 내 자신의 주인공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내 안의 가치를 꼭 찾아갔으면 좋겠다.
연탄
유약영 감독의 《먼 훗날 우리》는 춘절을 맞아 고향으로 가는 기차에서 우연히 만난 두 청춘, '젠칭'과 '샤오샤오'의 10년에 걸친 만남과 이별을 다룬 작품이다.이 영화는 단순한 로맨스 장르의 문법에 머무르지 않고, 베이징이라는 거대한 대도시에서 성공을 꿈꾸는 이주 청년들의 경제적 결핍과 현실적인 한계를 보여주는 영화이다.이 영화에서 가장 돋보이는 시각적 장치는 색채의 활용이다. 일반적인 영화들이 과거를 흑백으로, 현재를 컬러로 표현하는 것과 달리, 이 작품은 과거의 연애 시절을 컬러로, 재회한 현재를 무채색의 흑백으로 표현한다.이는 젠칭이 개발하던 게임 속 설정(켈리가 이언을 찾지 못하면 세상은 흑백이 된다)과 맞물리며, 경제적 성공을 거두었음에도 서로를 잃어버린 현재의 삶이 지닌 공허함을 시각적으로 증명한다. 영화의 후반부, 두 사람은 "만약 그때 네가 떠나지 않았다면,우리는 달라졌을까?"라는 가정을 던지지만, 결국 현실을 받아들인다." 그때 너는 성곡하지 못했을 거고, 결국 우리는 헤어졌을 것"이러는 결론은 과거에 대한 미련을 털어내고 서로의 성장을 인정하는 성숙한 이별의 태도를 보여준다. 결국 이 영화는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다'는 식의 후회가 아니라 서로가 있었기에 비로소 어른이 될 수 있었던 청춘의 한 페이지를 담담하게 위로하는 의미를 전달하고 싶은 것 같다.
연탄
" 여기에 왔어. 2만 광년을, 너와 있기 위해. 우주가 아무리 넓어도 직접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야기들이 있으니까."만약 누군가 나에게 이런 말을 건넨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대상이 외계인이든 사람이든 상관없다. 나라는 존재를 위해 이토록 조건 없는 사랑을 바치는 누군가가 있다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벅찬 감정이 피어오를 것만 같다. 그 상대가 외계인이든, 사람이든 중요하지 않다. 반면, 한아의 원래 남자친구인 경민에게서도 이런 사랑이 느껴지냐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글쎄'이다.그는 한아와 연애를 하면서도 늘 한아보다 자신의 여행ㅇ을 1순위에 두었다. 연인의 1순위가 무조건 내가 되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한아에 대한 배려도, 배려할 생각조차도 없어 보이는 그의 모습은 보는 내내 '이 사람은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하는 의구심을 자아낸다. 경민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기적이고, 오직 자신밖에 모르는 철없는 인간의 표본처럼 다가왔다.
연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