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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스탠리 큐브릭/1968
영화를 보다보면 클리셰적 요소들이 많이 등장한다. 새하얗고 기계적인 우주시설, AI의 이유있는 반란, 인간을 초월한 무언가 등 SF소설이나 영화를 한 번쯤 본 적이 있다면 자연스레 여러 작품들이 떠오를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요소들이 다 이 영화에서 시작된 것이라면?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정말 신기한 영화다. 너무 불친절하다.
이 영화는 대사가 매우 적다. 약 2시간 20분의 상영시간 동안 등장인물이 말하는 씬을 다 합친다고 해도 20분도 넘기지 못할 것이다.
방대한 이야기를 담았고, 결말도 매우 인상적이다. 그러나 처음 다 보고 나면 '그래서 이게 뭔데'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어쩔 수 없다. 20분도 안 되는 대사를 보고 모든 내용을 해석하는 건 평론가들이나 가능한 것이지, 일반 관객이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나도 그랬다. 영화를 다 보고 무엇을 이야기하려한지는 대강은 알 거 같았다. 하지만 너무 추상적이였고, 결국 해석 동영상을 찾아볼 수 밖에 없었다.
나는 해석 동영상을 찾아보았지만 만약 내용을 고찰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불친절함이 오히려 이득이 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불친절하지만 해석에 필요한 내용이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영화를 계속 돌려가면서 주의깊게 살펴보면 스토리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의 특징 중 하나는 인간이 아직 달에 간 적이 없는 1968년에 제작된 영화가 맞나 싶을 정도로 우주에서 지내는 사람들에 대한 묘사가 구체적이라는 것이다. 이런 구체적인 묘사가 가능했던 이유는 영화감독이 NASA의 보고서를 뒤져가면서까지 과학기술을 조사하였기 때문이다. 무중력 상태에서 음식이 떠다니지 않도록 음식은 고체 음식을 제공하고, 시설 바닥에 발을 내딛을 수 있도록 신발 밑창엔 밸크로를 부착하며 밸크로를 제대로 붙이기 위한 승무원들의 한 발 한 발 조심스러운 걸음걸이...이런 완성도가 1968년에 나올 수 있는 것일까. 감독이 이 영화를 만들 때 얼마나 세부사항에 신경썼는지를 알 수 있었다.
영화는 '인류의 기원 - 목성을 향해 여정을 떠남 - 목성에 도착' 과 같은 흐름으로 진행되는데, 나는 여기서 목성을 향해 여정을 떠날 때 등장한 HAL 9000이라는 인공지능 캐릭터가 인상깊었다.
HAL 9000은 우주선의 시설을 총관리하는 인공지능이다. HAL 9000은 거짓말이 들킬까봐 인간을 해치는데, 그 이유는 탐사 미션의 성공을 위해서였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해치는건 1968년에도 클리셰적인 요소였다고 한다. 그러나 목적을 가지고 인류를 해친건 HAL 9000이라는 캐릭터가 최초였다고 한다.
최근의 SF 영화에서 인공지능 캐릭터가 나오면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곤 한다. '얘는 언제 배신하려나',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으려나'
현재의 인공지능 캐릭터에게서 빠질 수 없는 목적있는 악행이라는 설정을 만든게 바로 HAL 9000인 것이다. HAL 9000이 등장하며 인공지능 캐릭터들은 단순한 살인기계에서 매력적이며 지성적인 미워할 수 없는 악역 캐릭터로 성장하였다. 정말 인상깊었다. 영화관에서 이 캐릭터를 처음 본 사람들은 과연 어떤 반응을 하였을까? 당시 매우 큰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을 것으로 상상한다. HAL 9000을 유튜브에 검색해보면 지금도 인기를 끌고 있는 캐릭터인 것을 알 수 있다. 아마 당시엔 정말 큰 인기를 누렸을 것이다.
지금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면 '뭐야 가장 영향력있는 SF영화라면서? 뻔하잖아'라는 반응이 나올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SF영화계의 클리셰를 이 영화가 처음 시도하였단걸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당시엔 정말 충격적이였을 것이다. 기존의 SF영화와는 다른 목적을 가지고 악행을 행한다는 AI의 설정, 현실적인 우주 공간에서의 생활 묘사, 인간이 인간에서 초월하는 묘사가 현재의 SF영화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것은 인정할 수 밖에 없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뻔하더래도 꼭 한 번 봐야할 영화라고 생각한다. 때로는 클래식 이즈 베스트라고 하지 않는가. 현재 SF영화의 틀을 만든 작품을 한 번 봐둬서 나쁠 것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