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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봄
레이첼 카슨 저/김은령 역/홍욱희 감수 | 에코리브르 | 2011년 12월 30일
봄은 새로운 생명력이 꽃 피워지는 시기를 상징하는 계절 중 하나이다. 그러나 이 책은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봄의 이미지와 달리 ‘침묵의 봄’이라는 제목으로 조금은 역설적인 저자의 생각을 암시하고 있는 듯 보인다. 이것이 내가 이 책을 읽고 싶다고 선택하게 된 계기이자 궁금증을 해소하고자 책장을 넘기게 된 첫 시작이었다.
책의 주 핵심소재인 ‘살충제’를 처음 접하게 되었을 때 그것이 위험하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꼭 필요한 화학물질이라고 생각했었다. 인간에게 어떠한 해를 입히지 않더라도 일반적으로는 벌레를 싫어하는 것이 사람의 특징이다. 나 역시 벌레라고 하면 무서운 생명체이고 외관이 징그럽게 생겨 꺼려졌기 때문에 인간에게는 방해만 된다고 생각해 왔다. 대개 벌레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가장 첫 번째로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벌레를 없앨 수만 있다면 적어도 인간에게는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특히 농업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살충제가 필수이기 때문에 여러모로 인간에게 질 높은 삶을 제공한 수단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살충제에 대해 지식이 없었을 때의 이야기일 뿐이다. 「침묵의 봄」에서는 “그저 한두 종의 식물이나 동물을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계의 균형을 유지하고 생명체의 특성, 생명체와 환경의 상관관계에 대해 기본 지식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아마 이 문장만으로도 이 책을 설명할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여지껏 정부에서도 생태계에 존재하는 소수의 종을 억제하기 위해 살충제를 살포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한 사례로 네덜란드 느릅나무병을 예시로 들 수 있다. 느릅나무 껍질에 사는 딱정벌레가 병을 옮기고 다니자 뉴잉글랜드 지역에서는 딱정벌레를 없애기 위해 살충제를 살포하기 시작했다. 네덜란드 느릅나무병의 방제는 1954년 대학 구내에서 소규모로 시작되었지만 다음해에는 살충제의 살포 범위가 확대되어 각종 화학약품들이 퍼붓듯 땅에 뿌려졌다고 한다.
적은 양의 살포가 이루어졌던 1954년에는 큰 문제가 없어 보였지만 문제는 다음해 봄이었다. 살충제가 살포된 줄도 모른 채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온 수많은 울새들이 그야말로 떼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살충제를 뿌린 이들은 하나같이 새에게 무해하다고 강조했지만 약품의 독성으로 인해 많은 새들이 심한 경련을 떨며 처참히 죽게 된 것이다. 새들은 살충제가 뿌려진 지역에 발을 디뎠을 뿐인데 과연 무엇이 문제였을까?
문제는 울새들이 살충제와 직접적으로 접촉한 것이 아니라 지렁이들을 먹으면서 간접적으로 중독되었다는 것이다. 생태계는 다양한 먹이사슬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단순히 하나의 종만을 박멸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나의 종을 박멸시키고자 한다면 반드시 다른 종들도 이러한 비극을 같이 겪게 되어 결국 자연은 인간에 의해 파괴되고 말 것이다.
그런데 책을 읽다 의문이 생겼다. 살포한 살충제의 양이 소량이었다면 살충제의 양에 비례하게 생물들이 죽는 것이 맞지 않나? 나의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은 화학약품 중 일부인 DDT와 DDD였다. DDT는 지방화가 되었을 때 생물학적으로 증폭되기 때문에 실제 자연에 살포된 양이 극소량이라고 해도 인체 내에서는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DDD는 자연적인 먹이사슬을 통해 폭발적으로 독소가 축적되어 결국 먹이사슬의 최고점에 있는 인간이 DDD를 섭취하게 되면 죽음에 이르는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이를 통해 살충제의 양이 극소량이라고 해서 인간이 이것으로부터 안전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도 마찬가지이며 순간의 편리함을 위해 투여한 살충제가 끝내 부메랑이 되어 인간에게 끔찍한 무기가 되어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살충제와 같은 화학 약품을 가지고 있는 먹이사슬의 정점에 있는 인간일수록 경각심을 느끼고 행동에 주의해야 자연을 파괴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책을 읽으며 많이 분노했던 점은 살충제 없이도 해충을 충분히 막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선충 때문에 장미가 병에 걸렸지만 화학살충제 없이도 장미나무를 살릴 수 있었던 방법이 존재했다. 선충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장미나무 옆에 메리골드를 심는 것이다. 메리골드의 뿌리에서는 토양 속의 선충류를 죽이는 물질이 자연적으로 분비되기 때문에 장미는 살충제 없이도 건강해질 수 있었던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 과학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자연 보존의 필요성을 간과하지 않았기 때문에 장미나무를 지킬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장미나무를 병들게 했던 선충을 없애기 위해 무조건 살충제를 뿌리기 보다는 식물들 간에 어떤 상호작용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먼저 알아야 할 것 같다. 생태계에 존재하는 생명체가 다양하듯 벌어진 문제를 해결하는 해결책 역시 다양할 것이다. 모든 문제에 살충제를 도입한다면 정부 입장에서는 편한 방법이었지만 생태계에 스며든 살충제는 생물들을 지속적으로 죽이는 수단이 될 뿐이다.
책의 소제목 중 유독 눈에 띄었던 ‘자연의 반격’은 정말 흥미로웠다. 「침묵의 봄」에서는 자연을 일정한 틀에 맞추려 온갖 위험을 무릅쓰다 결국 목적에 달성하지 못하는 인간의 상황을 풍자하고 있었다. 인류는 수없이 자연에 대항해 왔고 자신들이 정한 규격에 맞추고 싶어했지만 빈번히 실패하고 말았는데 이것을 정확히 짚어낸 것이다. 오늘날 곤충방제 프로그램의 핵심은 자연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하는데 처음엔 너무 자연중심적인 발언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러나 자연은 인간이 원하는 대로 쉽게 바뀌지 않았고 살충제의 살포는 오히려 더 많은 종의 해충을 야기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는 것이 그 증거이다. 한 사례로 사슴보호 캠패인을 예시로 들 수 있다. 균형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던 먹이사슬을 깨고 사슴을 잡아먹는 포식자들을 조절하자 사슴의 수가 급속도로 증가했다. 먹이가 바닥나 버리자 사슴들은 굶어 죽게 되었고 우리의 의도와는 다른 결과가 다시금 벌어지고 만 것이다.
최근 현대 사회는 자본주의 세대에 걸맞게 편리성만을 추구한다. 다양한 생명체들로 가득한 푸른 자연이 번거롭고 귀찮게 느껴진 사람들은 이제 하나 둘씩 도시로 떠나며 자연과 멀어져가고 있다. 단순히 멀어지는 것에 그치지 않고 보기 싫다며 제거해 버릴 방법을 논의하고 자연을 멋대로 조종하려 하는 모습이 파다하다. 자신의 본래 고향을 파괴하는 데 급급한 생명체는 지구상에서 인간이 유일할 것이다. 살충제가 비극을 초래할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던 행동 역시 인간의 불찰이고 책임 역시 우리에게 존재한다. 정확히 알지 못한 채 무방비하게 화학약품을 노출시킨 우리 인간의 무지함의 극치를 보여 준 「침묵의 봄」을 읽으며 나 역시 살충제의 역사와 심각성에 대해 인지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살충제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도 많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보통 살충제는 우리의 삶의 질을 높여주는 하나의 긍정적인 수단으로 많이 인식돼 있다. 살충제는 언제나 구입할 수 있도록 준비돼 있고 심지어 우리에게 친근하면서도 익숙한 이미지로 다가온다. 과거에는 생태계를 비롯해 환경을 무자비하게 파괴한 주범인 살충제였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태연하게 벌레로부터 환경을 지킬 수 있다며 수요공급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책을 읽고 난 후 실제 사람들이 살충제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궁금해 살충제를 구매한 사람들의 후기를 살펴본 바 있다. 밭을 일구는 한 농부가 호스로 살충제를 대량으로 뿌리고 있는 모습을 사진으로 올렸다. 벌레가 생기지 않기를 바란다며 구매 후기를 게시한 것을 보고 마음이 오래도록 불편했다. 살충제로 인해 벌레를 볼 수 없어 기쁘겠지만 살충제가 뿌려진 땅은 몇십 년이 넘도록 고통받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오랜 시간 동안 축적되어 땅은 병들고 그 땅에서 자라는 일부 생명체들 역시 죽어갈 것이 뻔했다. 그렇다고 해서 살충제를 마구 뿌리는 사람이 잘못되었다고 그들을 손가락질하고 싶지는 않다. 비난을 받아야 할 대상은 그 살충제를 손에 쥐고 있는 업체들, 더 나아가 살충제 유통에 있어 제한을 두지 않는 정부의 문제도 뒤따른다고 본다. 그 위험성을 알고 있으면서도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환경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무관심한 공급이 정말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살충제에 대한 위험성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고 그만큼 나 자신이 얼마나 자연의 소중함을 간과했는지 알 수 있었던 조금은 부끄러운 시간이었다.
사람들은 살충제로 인해 과거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는다.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고 순간적인 효과를 기대하며 살충제 이용에 있어 거리낌이 없다는 것이 현실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환경은 끊임없이 파괴되고 있고 우리는 되돌아갈 수 없는 길을 걷고 있다. 정말 이번 농사가 잘 되기를 오래오래 바란다면 살충제의 사용을 일부 금해야 할 것이다. 일시적으로 편리함을 안겨 주는 만큼 후엔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하는 살충제 대신 비교적 안전한 방법을 쓰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 될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 자연적인 먹이사슬을 이용하는 것이 환경을 아끼는 첫걸음이 될 것이고 살충제로 인해 벌어지는 피해를 막아야만 할 것이다. 자연에 존재하는 여러 생명체들을 존중하고 그 자체로 이해한다면 보다 나은 환경이 되어가지 않을까 싶다. 책을 읽으며 살충제가 끼치는 영향을 넘어 미래 우리의 후손들을 위해 현재 살아가는 지식인들이 환경 문제에 대해 진중하게 생각해 보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푸른 지구 위에서 생생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는 지난의 과오를 반성하며 미래를 위해 현재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 한때 당연하게 여겨졌던 새의 노랫소리가 더 이상 들려오지 않을 때 그제야 우리는 그들을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바깥에서 들려오는 자연의 소리를 통해 사계절의 흐름을 체감하는 그야말로 자연스럽게 자연의 만물로써 살아갈 수 있는 하나의 인간이 되고 싶다.
「침묵의 봄」을 읽으며 나 역시 벌레에 대해 과도한 예민함을 보이지 않았는지 다시 한번 나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시야에 들어올 떄마다 그저 성가시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기피하고 필요 이상으로 혐오했던 지난 일이 떠올랐다. 하나의 생명을 그저 나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앞뒤 문맥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죽이려고만 들었던 나의 행동을 반성하게 되었다. 어쩌면 우리는 편리함에 익숙해져 거슬리는 대상을 없애버리는 데 너무 익숙해진 것은 아닐까? 당장에 닥친 문제만을 해결하기 위해 그 위험성과 추후에 벌어질 사태를 외면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현대인들에게 「침묵의 봄」이라는 책을 권한다. 환경 파괴에 대한 근본을 담고 있으며 해결 방안을 암시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농약과 살충제에 대해 모두가 안전해질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