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천지신명은 여자의 말을 듣지 않지
김이삭 저 | 래빗홀 | 2024년 06월 12일
딱 한 번 신기한 것을 본 때가 있었다. 언니와 함께 방을 공유했던 정말 어렸을 때였다. 문이 방의 옆에 있었고, 우리의 침대는 각각 방의 양옆을 차지하여 평행을 이루었다. 그래서 우리 자매는 가끔 침대를 붙여서 같이 밤을 즐기다가 부모님께 들켜서 급히 떼어놓기도 했다. 그날도 우리 침대에는 한 사람이 지나갈 만한 길목(?)이 있었다.
왜,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내가 왜 갑자기 잠에서 깬 건지 알 수 없어서 비몽사몽 거리며 눈을 깜빡거릴 때. 내가 그랬었다. 아주 깊은 밤일 것이 분명하고, 창문으로 아파트 주차장의 가로등 빛이 새어 들어오는 것으로 주변을 살피며 내가 왜 일어난 건지를 알아내려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고 있었을 때였다. 우리 자매의 침대의 길목에 무언가가 서있었다.
지금도 기억난다. 잠을 자고 있었던 터라 안경을 쓰고 있지 않아서 물체는 확실히 보이지 않았지만, 무언가가 서 있었던 것은 확실했다. 그도 그럴 것이 너무도 확연히 하얀 것이 길게 서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방에 저런 것을 걸어놓지도 않았거니와 놓을 수도 없게 그것은 언니의 침대 쪽에 붙어서 서 있었다. 즉, 다니는 길목에다 우리가 무언가를 걸어놓을 리가 없으니 그것은 정말로 존재해서는 안되는 곳에 존재하는 무언가였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보기도 전에 수마가 날 덮쳤다. 궁금증보다 잠에 취한 내 눈꺼풀이 이긴 셈이다.
그렇게 자고 일어나서 침대에 일어난 나는 곧장 언니의 침대 쪽을 바라보았다. 역시나 없었다. 하얀 것은 존재하지 않았고, 무언가를 걸어 놓거나 쌓아 놓은 것도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별로 무섭지 않았다. 보긴 봤지만, 그것이 날 해하지도 언니를 해하지도 않았고 잠도 달디달게 잘 자고 일어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커서 그것이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어릴 적 담임 선생님이 말씀하셨던 집에 강도가 든 사건을 무서워했던 나는 오히려 사람보다 귀신이 덜 무서웠을 것이다. 지금도 그 생각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귀신은 그저 거기에 서서 누군가 자신을 바라보기를 기다리고 있었을 뿐, 해코지 하지 않을 것이다. 어린아이가 자다가 소리 지르는 게 웃기고 어이없겠지만 그것뿐이었겠지. 하지만 사람이라면? 소리 지르는 즉시 그 사람은 무언가를 저질렀으리라 생각하니 역시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서도 그렇다. 가장 무서운 건 안정된 집단을 이루며 규칙이라는 질서로 사람들 간의 선을 그으며 그 밖의 존재들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사람들이다. 사람은 사람이 없다면 살 수 없다는 것이 당연하지만 나는 어쨌든 사람을 가장 많이 죽인 것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상함을 마주할 수 있는 용기가 사람에게서 나올 수 있다. 내가 어릴 적 귀신이라고 생각되는 그것을 마주했던 것은 쏟아지는 잠뿐만 아니라 옆에서 자는 언니, 그리고 옆방에서 주무시는 우리 부모님 덕분이었다. 용기로 이상함을 마주하여 상대방을 이해할 것인지, 혹은 용기로 이상한 상대방을 배척하여 ‘우리’를 공고히 할 것인지 어떤 것이 더욱 오래 이어질지는 다양성을 주장하는 말들을 보면 확연히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