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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소설 | 야밤의 객
공기가 말라 하루만 내놓아도 빨래가 마르는 시기가 지났다. 공기중에 매달린 습기는 모래주머니라도 찬것처럼, 혹은 기압에 더불어 수압도 받는 것처럼 몸을 무겁게 만든다.
아침에 일어나기가 버겁고, 밤에 잠드는 것이 아쉽다.
그렇다, 여름이 왔다. 방학시즌이 돌아오고 있다.
방학을 맞이해 대부분의 학생들이 으레 그렇듯, 나 역시 일찍이 자취방을 떠났다. 본가로 돌아오는 길에는 대전역에서 산 성심당 종이봉투가 들려있다. 아직 달달한 것을 찾는 내 입맛에는 특별치도 않게 느껴지지만, 부모님은 슬 담백하고 적절한 맛을 찾을 나이가 되신듯하다.
학기 중에는 약속이니, 영화니 하며 곧잘 내려오기 힘든 본가다. 익숙한 방은 책상에 먼지와 과자가 늘어졌을 뿐 변한 것이 하나 없다. 가방에서 짐을 하나하나 꺼내 책상 위로 늘어놓고, 침대에 누웠다. 오늘은 지쳤다. 간만의 귀가로 모든 기력을 소진한 것이 아니다. 20대 초반의 체력은 그리 만만치가 않다. 다만 인간적으로 소주 1병에 맥주 2잔을 마시고 노래방 1시간을 뛴 상태에서 본가까지 버스타고 잘 내려온 정신력이라면 뭘 해도 될 놈이 아닐까. 나는 뭘 해도 될 놈이구나... 지쳐 늘어진 근육만큼 뇌세포간의 신호전달도 느슨해져 해괴한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해댄다. 그나마 주둥이를 움직일 기력이 없어 머릿속에서만 맴돈 생각임이 다행이었다.
저녁도 거르고 늘어진 자식을, 부모님은 부러 깨우진 않으신다. 저녁을 치우고 거실불을 끄는 김에 내 방에 들러 조용히 방의 불을 끈다. 문을 닫지 않는 것은 날이 후덥지근해서다. 바람은 통해야하니까.
그렇게 숙취와 여독에 절여진 뇌를 깨우는 것은 새벽 2시경의 빈 속도, 때아닌 부모님의 잔소리나 옆집 시츄의 외침도 아니었다.
찰박, 찰박.
물소리에 불현듯 눈이 뜨인다. 주변은 어두컴컴하다. 머지않아 어둠에 적응한 눈이 사물의 윤곽을 잡아낸다. 내 안경, 안경이 어디있지? 누워있던 몸을 일으키고 주변을 쓴다. 침대보는 습기를 먹어 눅눅하다. 무언가 손에 걸린다. 모서리가 둥그렇고, 묵직한 네모와 익숙한 그립감. 핸드폰이다. 후레쉬를 켤 요량으로 전원버튼을 눌렀다. 바깥에 울리는 개구리 울음소리에 버튼 딸깍이는 소리가 묻혔다.
전원이 나갔나, 아쉬움에 한숨이 나왔다. 대충 침대 아래로 몸을 기울여서, 방바닥에 떨궈놓은 충전기를 더듬거리며 찾았다. 찰박, 찰박. 다시금 물소리가 들린다.
우리 집이 시골이긴 하지, 당장 밖에 개구리 우는 소리하며 아침에 들리는 정체모를 새의 울음소리를 생각하면, 그래. 들릴만한 소리다. 으레 새벽에 울려도 이상치 않을 소리다. 물기어린 맨 발이 바닥에 찰박대는 소리는.
어느새 멈추었던 손을 다시 휘적인다. 아, 잡았다. 전선 중간을 붙들어 조심스레 죽 빼내니, 연결하는 부분이 손에 걸렸다. 충전기에 꽂은 폰을 침대 아래에 내려놓고, 다시 안경을 찾으려 상체를 세웠다.
찰박찰박찰박. 가만 생각하면 이상하지 않나, 밖에 불어오는 바람은 상쾌하기 짝이 없고, 개구리 우는 소리에는 빗소리가 섞이지 않았다. 습기를 머금은 침대보도, 장마기간이 다가와 비가 올락말락하는 날씨에 이런 것이지 일기예보는 내일 점심즘부터 비가 온다고 했다.
누가 씻고 나왔나보지, 괜스레 힘이 들어가는 몸을 삐걱거리며 침대에 누웠다. 개구리소리가 유독 크게 들린다.
개구리야 개구리야 왜그리 우니?
엄마 무덤 떠내려갈까 운다.
그러게 부동산을 잘 봤어야지, 저기 황새네는 침수걱정 없는 집이라던데.
이게 뭔 소리야. 얕게 든 선잠에 스스로 황당해 일어났다. 다시 찰박이는 소리가 들린다. 찰박찰박찰박. 그 발소리는 문 바깥에서 울린다. 멀어졌다가, 가까워졌다가. 거실을 이곳 저곳 돌아다니는 것처럼 발소리가 멎고 다시 들리기를 반복한다.
이상하지 않아? 선잠에 얼마나 들었는지는 몰라도, 물이 아직도 안 마르는게 말이 되나? 떠오르는 질문에 스스로 고통받기 시작한다. 아, 밤에 괴담썰도 보지 않는 제게 어찌하여 이런 시련을 주시옵나이까. 머리를 굴린다. 물을 다시 적셔왔나? 겠나요, 학생. 정신차리시길 바랍니다. 겨우 꺼내온 가능성은 채 펼쳐지기도 전에 단호한 혹평을 받는다.
찰박찰박찰박찰박, 걸음이 점차 가까워진다. 의식하지말자, 의식하지말자. 눈을 다시 감고 명상을 시작한다. 이러다보면 잠들겠지. 쪽팔린 중학교 시절 흑역사나 다시 떠올리고 있을까? 현실 괴담과 과거사 중 어느 것이 더 끔찍한지 고민하던찰나, 후각세포가 의견하나를 내놓는다.
물비릿내 나는데?
소리만큼 냄새도 가까워진다. 비냄새와는 선뜻 다른, 고인 물에서 나는 썩은 냄새가 비강을 습격하기 시작한다..! 삐걱, 하고 문지방이 밟히는 소리가 났다.
아, 뒤돌아 누울걸. 지독한 냄새에 반사적으로 구겨지는 인상을 최대한 펼친다. 나는 잠에 들었다, 잠든상태, 멜라토닌 열일중. 별별 헛소리를 뇌까리며 자기최면을 걸었다. 눈을 감아도 느껴지는 인기척이라는 것이 있다. 한참이나, 내 방 문지방 위 인기척은 사라지지 않았다. 슬슬 물비릿내에도 적응될 즈음, 그리고 머릿속의 행복회로가 다시 불살라지며 이 모든게 꿈이었다는 해피완벽 엔딩을 상상하기 시작할 즘.
"자는 척 되게 못하네."
심장이 철렁인다. 목소리는 생전 처음 듣는 것이고, 잔뜩 겁에 질렸으니 나잇대나 성별은 어찌되어도 좋았다. 눈을 떠 낯선 사람, 혹은 존재가 우리 집에, 내 방 앞에 서있다는 상황을 마주하기가 두려웠다.
"자는 사람도 인상은 쓰거든? 다음엔 잘 해봐."
첫마디에 아뿔싸, 그렇구나. 깨달음을 얻은 뒤 이어지는 문장에 다시금 생각이 숭덩숭덩 잘려나간다. 네? 다음? 다음이요?
눈을 뜨고 질문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지만, 황당함에 들은 말을 곱씹으려던 중 다시금 발소리가 들린다. 찰박찰박찰박, 황당한 일본 공포게임마냥, 찰박찰박, 발소리가 멀어진다...
아침, 거실에서 들리는 청소기 소리에 눈을 뜨자 엄마가 빵이라도 먹겠냐며 물어온다. 전날 사들고 온 빵에 두유를 먹었다. 이름도 모르고 막 집어온 빵이 생각보다 맛나서, 느낀대로 이야기하니 배고픈데 뭔들 안 맛있겠냐는 답이 돌아왔다. 맞는 말에 빵을 마저 먹었다.
절반즘 먹었을까, 엄마는 청소기를 마저 돌리셨다. 아니지, 물걸레구나. 앞에 달린 동그란 걸레 두개가 빙글빙글 돌며 바닥을 닦아주는 전동 대걸레였다. 사실 명칭은 모른다. 엄마가 사서 엄마가 쓰는 물건이니까.
"아이고, 새벽에 누가 들어오기라도 했나. 바닥이 온통 흙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