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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즈는 우물이다.

뮤즈는 우물이다.
글쓴이 관리자3개월전

창작 에세이 | 뮤즈는 우물이다.


취미가 많다. 큐브를 맞추거나, 그림이나 소설쓰기는 기본이고, 영화나 책을 감상한 뒤 평을 쓰기도 한다. 개 중 가장 오래된 취미는 그림이고, 가진 기간 대비 많이 활동한 취미는 그림과 소설이다.


솔직히, 성실한 학생이긴 했어도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은 아니었다. 학창시절 그림 낙서가 없는 노트와 교과서가 없었다. 입시에 간절하게 매달린 기간도 주변 친구들보다 확연히 짧았고, 시험기간에 취미를 자제한 것은 어디까지나 양심문제였다. 도덕적인 인간이라고 자신하지는 않더라도 스스로 요청해 학원을 다니면서 입시에 소홀히 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범위였다. 그렇기에 시험기간에는 아무리 충동이 들어도 최대한으로 인내심을 발휘하려 했다.

그런데 참을 수 없는 순간이 한 번씩 찾아온다. 흔히들 *영감*이라든지, *그 분*같이 우연과 취향의 교차점이 들어맞는 순간말이다. 재밌는 건 그런 순간에 팍 떠오르는 그림은 구도와 색이 생생히 그려지기도 하고, 질감만 보이기도 하고, 그런 순간에 팍 떠오르는 글감은 단어나열이기도 했고, 문장 하나, 대사 하나, 전체적인 플릇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 모든 경험이 확실하게 하나로 분류되는 이유는 단순했다.


떠오르는 것을 표현하지 않았을 때 숨이 턱턱 막히는 느낌이 든다. 명치께에 고양이같은 동물이 누른다기보단, 횡경막 아래에 뭔가 콕 박혀서 숨을 방해하는 답답함이다. 그런 경우는 정말 황당하지만 자러 누웠다가도 일어나 메모지라도 찾아야한다. 휴대폰 불빛에 의존해서라도 쏟아내야한다. 연필이 마지막 선을 그은 뒤에야, 속에 콱 틀어박혀 짜증스럽게 하던 것이 쑥 내려간다. 안 그래도 밤에 잠이 잘 오질 않는데, 이런 답답함에 시달리면서 잠을 자기란 불가능하다.

이런 경험 탓에,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에는 몇번이고 밤에 일어나 휘갈기거나, 문제집 옆 메모공간에 불쑥 이상한 글귀나 밑그림이 그려진 경우가 많았다.


고등학교 삼학년이 되어서는 당연하지만 이전처럼 취미를 즐길수가 없었다. 여가시간을 정해 규칙적으로 공부하는 것보다, 빈곤한 기초스킬을 다지는 것이 시급했다.

그래서 한동안 그림이고 글이고 자제했는데, 초반에야 죽을 맛이었지만 수능을 본 날 즈음에는 학기 초 각오하고 거듭 욕망한 것처럼 곧장 그림을 그리고자 하는 마음도 들지 않았다. 불쑥 그분이 찾아오는 일도 드물어져 한동안은 존재마저도 잊고있었다. 며칠 전에야 겨우, 그 몇년에 걸친 경험치고 그제야 떠올렸을 정도로. 더이상 불현듯 차오르는 느낌에 어둠을 더듬어 필기구를 찾는 일도 없었다. 그리고 그런 경험에 비례라도 하듯, 최근에는 글이나 그림도 잘 그리지 않았다. 그리고 싶은 그림이 없어졌고, 쓰고싶은 순간도 없어졌다. 의식하고 나니 보이는 것들이었다.


이러한 경험 탓에 내게 글감같은 영감은 그야말로 우물이다. 물론 우물을 직접 본 적은 없지만, 듣기론 사람이 물을 퍼 관리하지 않는 우물은 마른다고 한다. 수능 뒤에도 한동안 좀체 연필을 쥐지 못한 경험과 너무나 잘 맞아떨어지지 않는가? 그래서 우물이다. 주기적으로 퍼올리면 마를 날이 없고, 관리하지 않으면 어느샌가 말라붙어 돌 사이에 낀 이끼와 바닥에 촉촉한 진흙만이 쓰였다는 과거를 짐작케한다.

만약 이대로 취미를 놓아버린다면, 그런 삶은 너무 지루할 정도로 단조롭지 않겠나? 그렇지만 억지로 우물에 물을 부어 흙탕물을 만드는 것도 그리 현명한 방법은 아닌듯해, 우물 근처에 빙빙 맴돌며 비가 오길 기다리기로 했다.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그리고 싶은 것이나 쓰고 싶은 것이 생길때까지 취미를 드물게라도 이어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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