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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사람이 이긴다/이해인/필름(Feelm)/2026 "다정함은 연민이 아니다. 누군가의 감정이 동화되어 시작되는 사랑의 언어다.""다정함에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 사실 나는 다정한 사람이라고 하면 스윗한 사람, 친절한 사람, 착한 사람이라고 일반화하여 정의하는 것에 그쳤는데 이 책을 읽고 나서 다정함에 대한 정의는 오히려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나에 대한 다정함, 상대방에 대한 다정함, 세계에 대한 다정함, 우주에 대한 다정함처럼 수많은 다정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위에 두 문장은 나의 마음에 가장 와닿는 다정함의 정의이다. 다정함은 흔히 상대방의 동정과 안타까움에서 비롯된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책에서는 다정함은 사랑의 언어이며 누군가의 감정이 동화되어 시작되는 것으로 정의한다. 또 다정함은 단순한 상대에 대한 감정이 아니라 나와 상대방, 그 외의 모든 사람이 살고 있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이다. 이 책에서 다정함은 ‘나’를 중심으로 상대방에게 퍼져나가는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다정한 사람인가? 사실 나는 내가 다정한 편에 속한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와 함께라면 나보다 상대방을 먼저 생각했다. 흔히 쿠션어라고 하는 말을 당연하게 사용했고, 나의 좋은 감정이든 좋지 않은 감정이든 숨기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다 보면 나의 숨겼던 감정들을 부모님께 말하거나 나 혼자 감정을 억누르고 지나갔다. 하지만 나를 감추는 다정함은 다정함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 가까운 사람에게 다정해야 한다는 책의 말처럼 오히려 밖에서 쌓아왔던 좋지 않은 감정들을 나와 가장 가깝다고 말할 수 있는 가족들에게 표출하는 아이러니가 나의 다정함이 아니라 사실 다정한 척을 한 걸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나의 태도를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다정함은 무엇인지에 대한 성찰을 무의식적으로 하게 되었다. 세상에 다정함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지 불가능한 상상을 하기도 했고 이 책을 모든 사람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품기도 했다. 나는 사랑을 주는 다정함을 상대방이 느끼도록 노력해야겠다. 사랑은 단순히 남녀 간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관심과 애정을 표현하는 단어라고 생각한다. 나는 누군가 나로 인해 세상이 아름답게 느껴지길 바란다. 나로 인해 자신의 세상이 생각보다 더 넓고 맑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좋겠다.
포말
정말 어린 시절에 읽었던 기억이 있는데 오랜만에 생각나 글을 적어본다.로젤린느 모렐의 <오렌지 1KG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는 거대한 비극 앞에 놓인 인간이 어떻게 일상이라는 궤도에서 이탈하지 않고 버텨내는지를 지독할 정도로 담담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이 소설은 가족을 잃은 슬픔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독자의 눈물을 짜내기 위해 감정을 과정하거나 슬픔을 아름답게 포장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아서 좋았다. 대신 작가가 선택한 방식은 비극과 일상의 잔인한 대비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주인공은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충격 속에서도 여전히 평온한 일상을 보내야 한다. 이 소설이 주는 기묘한 이질감은 바로 여기에서 나타난다. 내 세계는 무너졌는데 세상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너무나 성실하게 굴러가고, 나 자신조차도 생존을 위해 그 무심한 일상을 보내야 한다는 사실이 쓸쓸함?을 느끼게 해준다. 문체 역시 감정을 자극하려는 수식어가 없이 심플하다. 작가는 주인공이 느끼는 절망의 깊이를 서술하기보다 그가 매일 반복하는 단순한 행동의 동선을 무심히 따라간다고 느꼈다. 하지만 이러한 담백함이 오히려 독자에게 , 그리고 이 글의 주인공인 알리스에게는 더 큰 무게감으로 다가온다. 슬픔을 소리 높여 외치지 않기에 그 이면에 깔린 공허함과 고독이 더 생생하게 느껴지는 거 같다. 제목에 등장하는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라는 문장 역시 흔한 희망가난 따뜻한 위로의 메시지가 아니다. 이는 대단한 깨달음을 얻어 삶의 의지를 회복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인간이란 존재는 아무리 슬퍼도 배가 고프고 시간이 흐르면 움직여야만 하는 무서운 관성을 지닌 인물이라는 것을 이 책에서는 내포하고 있는 거 같다. 결국 이 소설은 비극을 이겨내는 극적인 기적 대신, 상실을 주머니 속에 쑤셔 넣은 채로 묵묵히 오늘...그리고 내일을 살아내는 현실적인 태도를 보여준다.
연탄
지금 적고 있는 이 영화의 제목은 '자백'이다. 2022년 10월 26일에 개봉한 스릴러/범죄 영화이다. 이 영화를 보고 난 후에 알았는데 스페인 스릴러 영화 <인비저블 게스트>를 원작으로 하여 만들어진 사실을 이 영화를 감상한 후에야 깨달았다. 근데 이 사실이 굳이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이 원작 영화를 보지 못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영화를 꽤 재밌게 봤다. 마지막 반전도 예상했던 것이 아니라 더욱 재밌게 봤다. 근데 이 영화에 대한 후기를 쓰려고 찾아본 결과 이 영화를 본 다른 사람들의 후기는 꽤 부정적이었다. 물론 긍정적으로 본 부분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점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이 영화를 추천한다. 그에 대한 감상으로 영화의 전반적인 내용은 밀실 살인 사건의 용의자가 된 유민호(소지섭)와 그의 무죄를 입증하려는 변호사 양신애(김윤진)의 대화로 전개된다. 눈이 내리고 있는 계절에 유민호의 개인 별장에서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가 긴장감이 팽팽해서 보는 내내 숨을 쉴 수 없었다. 사건의 재구성 방식이 매우 흥미로웠는데 "만약 이랬다면?" 이라는 가정을 바탕으로 대화에 따라 사건의 전말이 계속해서 뒤바뀌는데, 관객 역시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함께 추리할 수 있다는 점이 더욱 청자를 몰입하게 만들어 준다. 배우들의 연기는 좋았는데 특히 유민호(소지섭)을 압박해 들어가는 변호사를 연기하는 모습이 압도적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를 시청하는 것을 추천드린다.
연탄
이 글의 제목처럼 나는 다수의 사람이 더 나아가 사회가 나를 향해 끝없는 비난을 쏟아낸다면 과연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나는 과연 루소처럼 글을 써 모든 사실을 똑바로 전달할 수 있을까. 이 책은 당시 루소를 비난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지난 행동을 반성하며 해명하는 글이다.그는 1712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난 18세기 프랑스 철학자이다. 어머니는 자신을 낳고 난 후, 출산 후유증으로 사망한다. 자신의 아버지는 시계공인으로 생계를 이어가며 그가 10살 때 아버지마저 집을 나가게 되면서 숙부에게 맡겨져 여러 직업에 종사하며 각지를 돌아다니게 된다. 이 이야기를 보면 딱 떠오르는 생각이 '루소는 불우한 유년기를 보냈다' 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나는 이 책을 보면서 루소가 대단하고 용기있다고 느꼈다. 그런 감상을 느낀 이유가 자신의 고백록을 통해 자신의 모순에 대해 폭로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사실 이건 상단한 용기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자신의 약점을 남에게 보여주지 않기 위해 숨기고 숨기기 위해 자신을 방어하며 상대의 약점을 찾기 마련이다. 지금 사회를 보면 쉽게 그런 사람을 찾을 수 있다. 물론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루소는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주어 자신의 철학을 비난하는 반대파의 공격에 맞섰다는 점이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과연 나는 그렇게 행동할 수 있을까. 자신의 약점과 추악한 마음을 드러낼 수 있을까. 모든 사람들에게? 나는 못 할 것이다. 분명 나의 약점을 보이지 않기 위해 또 다른 거짓으로 나 자신을 꾸밀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추악한 나 자신과 마주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루소처럼 자신을 바라보는 태도를 기르고 싶다. 지금 아래의 글은 고백록에 쓰여있는 문장이다. " 나는 지금까지 상상조차 못하였던 계획 또 앞으로도 도저히 남이 흉내조차 낼 수 없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나는 나와같은 인간 대중을 향하여 한 사람의 인간을 자연 그대로 모습으로 보여주고 싶다. 즉, 그 인간이란 바로 나 자신이다. 최후의 심판을 고하는 나팔 소리가 어느 때 울려도 좋다. 나는 이 책을 손에 들고 지고한 재판관 앞에 나아가서 말하겠다. '이것이 나의 한 일의 전부입니다. 내 생각입니다. 내 모양입니다. ' 이처럼 나는 선이든 악이든 솔직히 고백하였다. 약한 일일지라고 하나도 감추지 않고 착한 일일지라도 하나도 덧붙이지 않았다. 신이여,나는 당신이 보신 그대로 나의 있는 전부를 쏟아놓은 것입니다."
연탄
남매의 탄생/안세화/비룡소/2021가족이란 어떤 존재일까? 우리가족은 엄마, 아빠, 오빠, 나로 구성되어있다. 만약 누군가가 나에게 부모님이 어떤 존재냐고 묻는다면 보통은 소중한 존재라든가 대체할 수 없는 존재라든가 하는 등의 대답을 할 것이다. 실제로 그들은 나에게 그런 존재이다. 하지만 오빠와의 관계에서는 서로를 그렇게 말하기에는 낯간지러운 사이가 아닌가 생각한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나에게 오빠란 어떤 존재인지 생각했다.이 책에서 주인공은 어느날 갑자기 오빠가 생긴다. 입양이나 부모님의 바람으로 생긴 오빠가 아닌 정말로 갑자기 오빠가 생긴 것이다. 심지어 주변사람들은 전부 주인공이 원래부터 오빠가 있었다고 말한다. 그러던 중 갑자기 누나가 생겼다는 친구를 만나게 되고, 함께 오빠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 하게 되는 이야기이다.이 책에서 주인공은 갑자기 생긴 오빠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노력하고, 없어지기를 바라지만 정말 없어지자 허전함을 느낀다. 또한 친구에게 오빠가 어떤 존재인지 묻자 정말 짜증나지만 끝까지 내 편이 되어줄 사람이라고 대답한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오빠란 없으면 허전하고, 나에게 힘든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말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닐까 생각하게 됐다.우리는 평소에 '현실남매'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이 표현은 현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남매로 겉으로는 싸우거나 무심해 보여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서로를 챙기는 관계를 묶어 부르는 말이다. 이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평소에는 현실남매라면 자주 싸우지만, 사실 누구보다 서로를 소중히 여기며 서로를 챙기는 관계가 결국 남매인 것 같다. 나에게 오빠도 정말 짜증나지만 사실 안보면 보고싶다고 생각하게 되는 존재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서로의 소중함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9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윤동주/스타북스/2022 고등학생 때부터 가장 좋아하는 시인이 누구냐는 질문에 단 한 번도 윤동주 시인을 말하지 않은 적이 없을 만큼 윤동주라는 사람을, 시인 윤동주를, 윤동주 시인의 시를 나는 동경한다. 특히 윤동주 시인의 대표적인 시들만 추려서 읽는 것과 윤동주 시인의 전 시집을 읽어보니 느낌이 매우 달랐다. 윤동주 시인하면 책 제목에도 있는 '하늘', '바람', '별'을 가장 많이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쭉 읽으면서 윤동주 시인이 자연 중에서 바다를 가지고 시를 쓴 것을 보고 되게 신기함을 느끼며 흥미롭게 읽었다. 73쪽에 나오는 「바다」라는 시이다. 시를 처음에 읽고 나서 그냥 자연에 있는 바다를 보는 윤동주 시인의 시선을 섰다고 생각했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그 바람에 흔들리는 솔나무를 바라보고 파도의 물결을 폭포로 보고 있으며 바다에서 모래놀이하는 아이들을 보는 그런 시선을 담고 있다고 생각했다. 되게 밝고 시원한 느낌이라고 생각했는데 '바다는 자꼬 섧어진다'라는 문장에서 섧어진다의 의미를 몰라 찾아봤는데 서러워진다는 표현이었다. 바다에는 바람과 솔나무와 파도와 아이들이 있는데 왜 서럽다는 것일까. 그 뒤 문장들을 읽고 나서 알게 되었다. 아마 갈매기의 노래 때문에 바다는 서러워지는데 그 갈매기는 돌아가 보고 돌아가 보고 돌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에 자신의 곁을 떠나는 갈매기를 생각하며 그런 감정이 들게 되는 것이라 느꼈다.윤동주 시인이 바다를 제재로 삼아 쓴 시라서 되게 유심히 읽었는데 그 쪽수의 밑을 보니 (1937.9 원산 송도원에서)라고 쓰여 있는 것을 보고 찾아봤는데 실제로 원산 송도원은 바다와 매우 가깝고 윤동주 시인이 아마 여기서 이 시를 쓴 것으로 추측해 봤을 때 바다를 그리 많이 볼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보니 아마 갈매기를 자신이라고 생각하고 시를 쓴 것으로 생각했다. 자신이 바다를 또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르는 미래를 떠올리며 이제는 다시 어두운 현실로 돌아가야 하는 자신을 갈매기의 모습으로 생각하며 오늘만 볼 수 있는 오늘의 바다를 그리워하는 심정을 담았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많은 시들 중에서 「바다」라는 시가 나에게 오래 기억되었던 이유가 무엇일지 많이 생각해 봤다. 나는 윤동주 시인의 시 중 하늘을 가지고 쓴 시를 가장 좋아하는데 맑고 깨끗한 푸르른 공간을 생각하면 기분이 맑아지기 때문이다. 「별 헤는 밤」, 「비 오는 밤」처럼 하늘을 바라보고 자신이 동경하는 것들을 생각하며 느꼈던 감정들을 표현한 시를 특히 좋아한다. 하늘을 바라보며 이상을 꿈꾸던 윤동주 시인은 푸르른 바다를 푸르른 하늘과 같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바다를 제재로 한 시는 이것이 유일한 것 아닐까? 그만큼 아끼고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겼을 것을 생각하니 「바다」라는 시가 가장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었다.
포말
나의 사탄/백은별/위즈덤하우스/2026이 책은 기독교인이던 주인공(소정)이 독서모임에서 만난 여자아이(Y)를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이다. 이 문장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이야기는 기독교인이던 주인공이 동성을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이다. 소정이는 기독교인으로써 Y를 사랑하는 것을 계속 갈등하게 되지만, 결국 지옥으로 떨어지더라도 이게 운명이라면 받아들이겠다는 선택을 하게 된다. 이 모든 것이 어른으로 향하는 과정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다. 운명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말을 보면서 주인공이 어떤 선택을 하든 책임을 질 준비가 되었고, 어른이 되어가는 중이라는 생각을 했다. 작가인터뷰에서 작가님은 주인공을 연약한 사람으로 보셨냐는 질문에 사랑 앞에서는 강해질 필요가 없으니까 라고 말을 하셨는데 그 부분이 이 책을 가장 잘 설명해준다고 생각했다. 왜 늘 사랑과 관련된 이야기를 읽으면 여운이 길게 남을까, 왜 늘 사랑과 관련된 이야기는 사랑을 받을까 생각해보면 결국 이 말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아무리 사랑한다고 해도 싸우면 약해보이지 않으려고 서로 자존심을 세우기 바쁘지만, 사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강하지 않은 거야말로 진짜 강한 사람이 아닐까 생각한다.작가인터뷰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은 자신은 기독교인도 아니고 동성애자도 아니기 때문에, 기독교 박해나 동성애 지지처럼 보이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한 것이다. 그 덕분에 이 책을 읽는 동안 기독교나 동성애가 한 요소처럼 느껴졌고, 편견이 생길만한 부분은 거의 없었다. 자세하지 않아서 아쉬운 부분도 존재했던 책이지만, 전체적인 줄거리나 포근한 분위기가 설레었고 좋았다. 짧은 사랑이야기를 읽고 싶다면 한 번쯤 읽어봐도 괜찮은 책인 것 같다.
9월
코코/리 언크리치/2017<코코>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장면은 망자들의 세계이다. 표면적으로 죽음 이후의 사후 세계를 표현했지만 사후 세계를 표현하는 방식이 너무나 신선한 설정으로 다가왔다. 먼저 망자의 세계인 저승을 가는 과정에서 입국 심사대의 입출국 기준은 가족들이나 인연이 있던 사람이 자신의 사진을 제단에 올려두는 것으로 사진이 없는 영혼들은 출국 허가를 받지 못하고 혹여나 다리를 건너게 되더라도 단 한 발짝도 건널 수 없게 된다. 또한 이승에서 기억해 주는 사람이 단 한 명도 남지 않게 된 망자는 망자의 세계에서도 소멸해 버리는 마지막 죽음을 겪게 된다는 이야기가 가장 인상 깊었다. 영화에서 죽음을 유쾌하게 풀어내어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 이후에 잊혀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말하고자 했다고 생각한다. 이는 이승에 남아 있는 자들에게 죽음 이후 우리가 어떻게 기억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준다. 언젠가 우리 모두 세상을 떠나게 되겠지만 나를 기억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면 나는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우리 집은 매년 설날, 추석, 돌아가신 날에 친할머니의 제사를 지낸다. 지금은 친가와의 시간이 잘 맞지 않고 부모님도 힘들어하셔서 돌아가신 날에만 제사를 지내고 있다. 사실 제사를 지내는 날은 항상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해서 힘들기도 하고 제사를 지낸다고 해도 살아계실 때 해드리는 게 아닌데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솔직히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코코>를 보고 나서는 죽음 이후에도 살아있을 때처럼 잘 모셔야 하고 만약 그렇지 못하더라도 제사는 친할머니를 기억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니 제사를 지내는 것에 대한 작은 불만들도 사라졌다. 어떻게 보면 제사는 돌아가신 분만 위하는 것이 아니라 남아 있는 사람들이 위안을 얻고 잊지 않기 위해 마음을 다잡는 시간이 될 수도 있겠다. 이렇게 <코코>는 죽음보다 기억의 소중함을 일깨워줬고, 언젠가 이 세상을 떠나게 되더라도 누군가의 따뜻하고 좋은 기억 속에 남아 있을 수 있도록 지금의 삶에 충실히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포말
완득이(김려령《완득이》)/이한/2011 <완득이>에 나오는 동주는 완득의 옆 옥탑방에 살고 있는 일반사회교사이자 담임 선생님으로 학생들에게 공부를 강요하지 않으며 자신이 없을 땐 놀고 방학에는 운동하라고 할 만큼 자유로운 성향이다. 완득은 세상과 거리를 두는 학생으로 가정 형편도 좋지 않고 학교에서 제대로 된 생활을 하지 못한다. 특히 영화에서 완득과 동주의 관계를 가장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데 선생인 동주는 학생이 완득의 삶에 끼어들며 바꾸려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완득이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끊임없이 손을 내미는 모습을 보인다. 처음에 완득은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동주를 불편해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이 회피하고 있던 현실과 가족, 자신에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게 해준 것에 대한 약간의 고마움을 느끼기도 한다. 여기서 선생님인 동주는 학생을 ‘바꾸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바꾸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이 매우 인상 깊었다. <완득이>는 학생이라면 당연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되는 공부나 학업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한 명의 사람으로서 자기 자신과 자신의 가족에게 관심을 두고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게 해주는 선생님의 역할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영화를 보고 나서 한 가지 의문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교사는 학생의 삶에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는가? 교사가 학생의 삶에 개입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생각한다. 학생이 원하지 않을 수도 있고 학생이 원한다고 하더라도 원하는 정도를 모른다는 점에서 선생님의 역할은 매우 제한적이며 교사는 학생을 바꿀 수도 없을뿐더러 학생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도 없다는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는 중에도 교사가 학생의 삶에 깊게 개입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난 후에는 교사가 학생의 삶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여 방향을 결정해 주는 것이 아니라 영화의 동주처럼 학생이 스스로 자신의 삶을 개척할 수 있도록 곁에서 손을 내밀어 주는 교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또 학생의 학업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개인적인 삶에 관심을 가지려면 교사와 학생의 관계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어른과 아이, 사람 대 사람으로서 마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사는 학생을 대신하여 살아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학생에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조금은 아름답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스승과 같은 존재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포말
얼굴/연상호/2025 시각장애인 영규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의 아름다움을 갈망하고 자신이 만드는 도장이 아름답다는 타인의 인정과 존경을 받는 것이 삶의 가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평생 차별과 편견을 받아온 영규는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건 추한 것이라 단정하는 왜곡된 생각을 가지게 된다. 영규의 아내인 영희는 평범한 외모를 가지고 있지만 말이 어눌하고 느리다는 이유로 주변 사람들에게 괴물이라고 낙인찍히게 된다. 이런 평가가 아내에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마저 아름답지 못한 존재가 되고 자신을 속였다는 잘못된 판단으로 아내를 죽이게 된다. 영희를 죽인 사람이 정말 영규가 맞을까? 표면적으로 영화에서 영희를 죽인 사람은 영규임은 사실이지만 영규는 본래 누군가를 해치는 악한 사람이 아니었고 시각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제외하면 다른 사람과 비슷하게 평범한 존재이다. 영규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은 자신의 기준이 아니라 사람들의 평가로부터 비롯된 것이며 자신이 직접 보고 판단할 수 없어서 사람들의 평가와 시선이 모든 것의 판단 기준이 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영희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은 영규가 아니라 영희를 괴물이라고 단정하고 끊임없이 낙인을 찍어버린 사람들이 편견과 시선이라고 생각한다. 시각장애인으로 평생을 사람들의 평가 속에서 살아온 영규는 결국 자신의 눈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다. 영규 역시 그 편견의 또 다른 피해자일 지도 모르겠다. 특히 영화의 연출과 마지막 장면이 이 영화가 비판하고자 하는 부분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영화가 끝나기 전까지 영희의 얼굴은 절대 나오지 않은 채 사람들의 비난과 편견만을 듣게 되다 보니 영규의 아들인 동환과 관객은 모두 자연스럽게 영희가 못생겼을 것, 얼굴에 문제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영화 마지막 부분에 너무나 평범하게 생긴 영희의 얼굴 사진을 보여주며 동환이 무너지는 과정과 함께 영화는 끝나게 된다. 이러한 연출을 통해 관객들마저 사람들의 시선과 편견에 자연스럽게 휩쓸리고 무의식적으로 고정관념을 갖게 되는 사실을 깨닫게 만들고 이러한 행동을 비판하고자 한 영화의 의도를 알 수 있었다. <얼굴>은 사소한 편견과 끝없는 소문이 사람을 죽음까지 이어지는 과정을 보여주며 아름다움을 갈망하는 자의 계속되는 욕심을 비판하고 있다. 사실 사람을 처음 만날 때 너무나 당연하다시피 상대방의 얼굴을 보고 예쁘다, 잘생겼다, 멋있다, 아름답다고 판단하고 이런 사람들이면 착하겠지, 대단하겠지, 말도 잘하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사실 나중에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을 때도 많고 누군가를 평가하는 나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 이러한 판단을 멈출 수 없다는 사실에 허무함을 느끼게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겉모습으로 모든 것의 판단이 끝나는 것이 얼마나 잔인하고 무서운 것인지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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