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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연상호/2025 시각장애인 영규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의 아름다움을 갈망하고 자신이 만드는 도장이 아름답다는 타인의 인정과 존경을 받는 것이 삶의 가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평생 차별과 편견을 받아온 영규는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건 추한 것이라 단정하는 왜곡된 생각을 가지게 된다. 영규의 아내인 영희는 평범한 외모를 가지고 있지만 말이 어눌하고 느리다는 이유로 주변 사람들에게 괴물이라고 낙인찍히게 된다. 이런 평가가 아내에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마저 아름답지 못한 존재가 되고 자신을 속였다는 잘못된 판단으로 아내를 죽이게 된다. 영희를 죽인 사람이 정말 영규가 맞을까? 표면적으로 영화에서 영희를 죽인 사람은 영규임은 사실이지만 영규는 본래 누군가를 해치는 악한 사람이 아니었고 시각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제외하면 다른 사람과 비슷하게 평범한 존재이다. 영규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은 자신의 기준이 아니라 사람들의 평가로부터 비롯된 것이며 자신이 직접 보고 판단할 수 없어서 사람들의 평가와 시선이 모든 것의 판단 기준이 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영희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은 영규가 아니라 영희를 괴물이라고 단정하고 끊임없이 낙인을 찍어버린 사람들이 편견과 시선이라고 생각한다. 시각장애인으로 평생을 사람들의 평가 속에서 살아온 영규는 결국 자신의 눈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다. 영규 역시 그 편견의 또 다른 피해자일 지도 모르겠다. 특히 영화의 연출과 마지막 장면이 이 영화가 비판하고자 하는 부분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영화가 끝나기 전까지 영희의 얼굴은 절대 나오지 않은 채 사람들의 비난과 편견만을 듣게 되다 보니 영규의 아들인 동환과 관객은 모두 자연스럽게 영희가 못생겼을 것, 얼굴에 문제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영화 마지막 부분에 너무나 평범하게 생긴 영희의 얼굴 사진을 보여주며 동환이 무너지는 과정과 함께 영화는 끝나게 된다. 이러한 연출을 통해 관객들마저 사람들의 시선과 편견에 자연스럽게 휩쓸리고 무의식적으로 고정관념을 갖게 되는 사실을 깨닫게 만들고 이러한 행동을 비판하고자 한 영화의 의도를 알 수 있었다. <얼굴>은 사소한 편견과 끝없는 소문이 사람을 죽음까지 이어지는 과정을 보여주며 아름다움을 갈망하는 자의 계속되는 욕심을 비판하고 있다. 사실 사람을 처음 만날 때 너무나 당연하다시피 상대방의 얼굴을 보고 예쁘다, 잘생겼다, 멋있다, 아름답다고 판단하고 이런 사람들이면 착하겠지, 대단하겠지, 말도 잘하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사실 나중에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을 때도 많고 누군가를 평가하는 나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 이러한 판단을 멈출 수 없다는 사실에 허무함을 느끼게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겉모습으로 모든 것의 판단이 끝나는 것이 얼마나 잔인하고 무서운 것인지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포말
두근두근 내 인생/김애란/창비/2011“네가 나의 슬픔이라 기쁘다, 나는.”“그러니까 너는, 자라서 꼭 누군가의 슬픔이 되렴.” 『두근두근 내 인생』에 나오는 ‘나’의 부모님이 조로증을 겪는, 삶이 얼마 남지 않은 ‘나’에게 해주는 말이다. 나는 누군가의 행복이 되고 싶다. 나의 부모님과 형제, 친구들이 나로 인해 항상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누군가의 슬픔이 되라는 것이 얼마나 모순된 말일까? 누군가의 슬픔이 된다는 건 어떤 것일까? 슬픔이 되라는 것은 서로가 다시 만나지 못하는 상황에서 나의 부재로 인해 상대방이 슬퍼할 만큼 상대방에게 소중한 사람이 되라는 의미라 생각했다. 어쩌면 누군가의 슬픔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오래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떠난 뒤에도 함께 나눴던 추억과 감정들이 계속해서 살아 움직이고 상대방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생각을 하다 보니 소설의 '나'가 소설을 쓴다는 사실이 인상 깊게 다가왔다. 이 소설은 자신이 나중에 죽게 되었을 때 부모님이 봐줬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쓰기 시작했고, 중간에는 인터넷 친구인 서하를 위해 소설을 완성한 부분이 인상 깊었다. 누군가를 위해 소설을 썼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낭만적이었고 내가 만약 소설의 '나'였다면 무엇을 남기고자 했을지 생각해 봤다. 예전에 학교 선생님과 상담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한 적이 있는데 선생님의 부모님께서 어릴 적에 돌아가시면서 몇십 년이 지난 지금 부모님의 목소리가 기억에서 점점 잊혀간다는 사실이 너무 슬프고 부모님의 목소리가 담긴 오디오나 동영상이 하나도 없어서 어떤 목소리로 선생님을 불러줬는지 이제는 듣지 못하는 게 너무나 힘들다고 하셨다. 그래서 선생님께서 최대한 늦기를 바라지만 만약에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많이 후회할 테니 지금부터라도 부모님의 목소리가 담긴 영상을 많이 남겨두라고 하셨다. 소설을 읽으면서 선생님의 이야기가 계속 생각이 났다. 그래서 나는 나의 목소리가 담긴 동영상을 많이 남겨뒀을 것이다. 소설의 '나'도 이와 비슷한 마음이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소설의 '나'는 조로증으로 인해 예전과는 전혀 다른 목소리를 가지게 되었기에 자신의 목소리와 생각을 간접적으로 잔잔히 기록하는 소설을 선택하여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자신을 가장 아끼고 사랑해 줬던 부모님과 처음으로 자신을 존중해준 서하가 자신을 다시 떠올릴 수 있도록 하고자 했을 것이다. 처음에는 누군가의 슬픔이 되라는 말이 너무나 모순적으로 들렸다. 평소에 나는 누군가의 행복이 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서 다른 생각들을 하게 되었다. 행복은 함께 있을 때 매우 선명하게 느껴지는 감정임은 틀림없지만 슬픔은 그 사람이 떠난 뒤에도 오래 남게 되는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누군가가 나를 떠올리며 슬퍼한다는 것은 내가 상대방에게 그만큼 소중한 존재였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그래서 이제는 나도 누군가의 슬픔이 되는 존재가 되고 싶다. 언젠가 가족들과 친구들과 헤어지는 날이 오겠지만 나를 기억하고 나의 부재를 슬퍼해 줄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내가 누군가에게 행복한 존재였다는 것을 증명해 줄 수 있음을 소설을 통해 알게 되었다.
포말
"무서운 건 악이 아니오. 시간이지. 아무도 그걸 이길 수 없거든."이 소설을 가장 잘 표현한 한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점차 나이를 먹어 30대,40대, 그리고 50대가 될 것이다. 나이를 먹고 싶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는 시간의 흐름을 피할 수는 없다. 그저 받아들여야 할 뿐이다.치매에 대해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 "치매는 죽음으로 가기 전 기억을 잊기 위한 과정일 뿐이다."과연 이 말은 맞는 말인가? 치매는 안타까운 병이라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병이 아닐까?언젠가 나이가 들어 스스로 올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순간이 온다면, 나는 과연 이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게 될까? 아직은 먼 미래의 일이라 그저 안타까워할 뿐이지만 말이다.주인공 김병수는 치매에 걸려 과거도 , 미래도 잃어버린 채 오직 현재만을 기록한다. 노트와 녹음기에 의지해 간신히 현재를 붙잡으며 살아간다. 그런 그가 정작 현재도 기억하지 못하면서,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를 걱정하며 딸 은희의 남자친구를 미행하기 시작한다. '살인범은 살인범을 알아본다.'면서.이 책은 "주인공의 시점은 항상 옳다."는 독자의 편견을 여지없이 깨부순다. 주인공의 시선이 늘 진실일 것이라는 착각은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다. 소설은 텍스트를 읽을 때 끊임없이 의심하고, 생각하고, 스스로 판단해야 함을 일깨워 준다.사실 우리는 일상에서도 많은 사람이 믿거나 널리 알려진 보편적인 사실에 대해 쉽게 의심하지 않는다. 혹시 대중심리에 이끌려 스스로 고정관념을 만들어내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보게 된다. 비록 소설 속 주인공은 치매 환자이지만, 결국 우리 인간 역시 믿고 싶은 대로 믿고,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곤 한다. 작가는 치매라는 극단적인 설정을 통해,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우리 인간의 보편적인 심리를 거울처럼 비춰주고 있다.
연탄
" 진실이요? 백 번 천 번 넘게 말했습니다. 전 아니라고요. 아무도 안 믿더라고요. 그때 깨달은 게 하나 있습니다. 세상은 진실을 듣는 게 아니구나. 세상은 듣고 싶은 대로만 듣는구나."이 문장은 이 책의 주인공인 서은이의 심정을 고스란히 전달해 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이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문장이다.우리는 과연 진실을 제대로 분별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요즘 인터넷이나 SNS를 보면 연예인이나 유명인의 작은 행동 하나에도 대중이 크게 반응하며 일을 키우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당사자의 실제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의미를 왜곡하고 해석하여 마녀사냥을 벌이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과연 우리는 이러한 세상 속에서 진실을 잘 구분하고 있는 걸까? 단편적인 모습 하나만 보고 누군가를 쉽게 단정 짓고 판단하는 태도는 우리가 반드시 고쳐야 할 고정관념이다. 대중은 이미 자기 뜻대로 결론을 내려놓고, 정작 중요한 진실에는 귀를 닫아버리곤 한다.소설 속에 등장하는 주연이 역시 이러한 마녀사냥의 피해자 중 한 명이다. 그동안 주연이가 했던 행동들이 누군가의 눈에 곱지 않게 보였다는 이유로, 사람들은 주연이를 오직 '나쁜 아이'로만 바라본다. 주연이의 실제 의도가 무엇이었는지, 선한 마음이 있었는지는 대중에게 중요하지 않다. 그저 평소 행실만을 꼬투리 잡아 주연이라는 인물 자체를 비난할 뿐이다.결국 이 책의 결말은 '주연이가 진짜 범인인가,아닌가'를 밝히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오직 눈앞의 사건을 해결하기 급급한 우리 사회에 '믿음'의 중요성과 '진실'이라는 단어의 무게감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만약 지금을 살아가는 당신이 주연이와 같은 상황에 부딪친다면 과연 어떻게 반응했을까?
연탄
이 책을 정말 오랜만에 다시 접하게 되었는데 중학교 때 이 책을 읽고 정말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있어 다른 누군가에게도 추천하고 싶어 이렇게 글을 쓴다."우리는 누군가의 들러리가 아니라, 자기 인생이라는 무대의 유일한 주인공이다."이 책은 우리에게 이 말을 전한다. 누군가가 나보다 잘나보이고 잘하는 것 같을 때 나는 과연 그 보다 잘 하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하는데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으면 한다. 나는 내 자신의 주인공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내 안의 가치를 꼭 찾아갔으면 좋겠다.
연탄
유약영 감독의 《먼 훗날 우리》는 춘절을 맞아 고향으로 가는 기차에서 우연히 만난 두 청춘, '젠칭'과 '샤오샤오'의 10년에 걸친 만남과 이별을 다룬 작품이다.이 영화는 단순한 로맨스 장르의 문법에 머무르지 않고, 베이징이라는 거대한 대도시에서 성공을 꿈꾸는 이주 청년들의 경제적 결핍과 현실적인 한계를 보여주는 영화이다.이 영화에서 가장 돋보이는 시각적 장치는 색채의 활용이다. 일반적인 영화들이 과거를 흑백으로, 현재를 컬러로 표현하는 것과 달리, 이 작품은 과거의 연애 시절을 컬러로, 재회한 현재를 무채색의 흑백으로 표현한다.이는 젠칭이 개발하던 게임 속 설정(켈리가 이언을 찾지 못하면 세상은 흑백이 된다)과 맞물리며, 경제적 성공을 거두었음에도 서로를 잃어버린 현재의 삶이 지닌 공허함을 시각적으로 증명한다. 영화의 후반부, 두 사람은 "만약 그때 네가 떠나지 않았다면,우리는 달라졌을까?"라는 가정을 던지지만, 결국 현실을 받아들인다." 그때 너는 성곡하지 못했을 거고, 결국 우리는 헤어졌을 것"이러는 결론은 과거에 대한 미련을 털어내고 서로의 성장을 인정하는 성숙한 이별의 태도를 보여준다. 결국 이 영화는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다'는 식의 후회가 아니라 서로가 있었기에 비로소 어른이 될 수 있었던 청춘의 한 페이지를 담담하게 위로하는 의미를 전달하고 싶은 것 같다.
연탄
" 여기에 왔어. 2만 광년을, 너와 있기 위해. 우주가 아무리 넓어도 직접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야기들이 있으니까."만약 누군가 나에게 이런 말을 건넨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대상이 외계인이든 사람이든 상관없다. 나라는 존재를 위해 이토록 조건 없는 사랑을 바치는 누군가가 있다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벅찬 감정이 피어오를 것만 같다. 그 상대가 외계인이든, 사람이든 중요하지 않다. 반면, 한아의 원래 남자친구인 경민에게서도 이런 사랑이 느껴지냐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글쎄'이다.그는 한아와 연애를 하면서도 늘 한아보다 자신의 여행ㅇ을 1순위에 두었다. 연인의 1순위가 무조건 내가 되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한아에 대한 배려도, 배려할 생각조차도 없어 보이는 그의 모습은 보는 내내 '이 사람은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하는 의구심을 자아낸다. 경민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기적이고, 오직 자신밖에 모르는 철없는 인간의 표본처럼 다가왔다.
연탄
살인의 추억/봉준호/2003<살인의 추억>은 개봉 당시 장기 미제사건이었던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한 봉준호 감독의 영화이다. 영화의 모티브가 된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은 1986년 9월~1991년 4월까지 경기도 화성군 부근에서 여성 10여 명을 강간, 살해한 사건이다. 1994년 청주 처제 살인사건의 무기수로 복역 중이던 이춘재가 2019년 DNA 검사 결과로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되었으며 화성 연쇄살인 14건 모두 자신이 진범이라고 자백했다고 한다. 모범 범죄로 분류되었던 8차 사건을 제외하고 범인이 검거되지 않은 상황에 공소시효는 만료되어 처벌은 불가능했지만, 25년 동안 모범수로 지내고 작업반장 역할을 하며 잔인한 연쇄살인범이라 생각하지 못할 만큼의 다른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이 사건의 범죄자로 확정이 나며 가석방 신청을 차단하여 영구히 격리하였다고 봐도 무방하다. 특히 경찰은 이춘재가 자백한 48(살인 12+2, 강간 19, 미수 15)건의 범죄 중 14건의 살인과 9건의 성폭행 사건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앞서 말했던 8차 사건은 당시 경찰의 고문과 강압수사로 거짓 자백을 하여 무기징역으로 20년간 복역한 윤성여 씨가 있다. 결국 2020년 12월 재심으로 무죄가 선고되었지만, 이때뿐만 아니라 이 사건의 수사 대상자는 2만여 명, 용의자로 지목 당한 사람은 3천명, 조사 후 4명은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전해진다. <살인의 추억>은 마지막 장면이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을 만큼 매우 유명하다. 영화가 나온 시기에는 범인이 잡히지 않을 때라 영화에서도 이를 반영하여 범인을 찾지 못한 채로 종결되었고 형사인 박두만은 형사 생활을 그만두게 된다. 가정을 꾸리고 일 때문에 봉고차를 타고 가다가 최초 희생자가 발견된 장소를 지나게 되면서 그 농수로를 살펴본다. 특히 이 장면에서 카메라의 기법과 배우의 시선 처리가 매우 돋보였는데 희생자가 있었던 좁고 작은 농수로를 형사였던 박두만이 쳐다보는 눈빛을 볼 수 있게 해주다가 관객이 박두만의 시선으로 1인칭의 시점으로 전환하여 점차 확대되는 장면이 사건을 끝내지 못했다는 절박함과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또 영화에서 한 소녀가 박두만에게 왜 안을 보고 있냐고 묻고 그냥 좀 봤다고 대답하지만, 소녀는 의아한 모습으로 “얼마 전에도 어떤 아저씨가 여기서 이 구멍 속 들여다보고 있었는데….”라고 말했고, 이어서 “옛날에 여기서, 자기가 했던 일이 생각나서 진짜 오랜만에 한번 와봤다...그러던데.”라고 말했다. 박두만은 아저씨의 인상착의를 묻고 소녀는 “그냥 평범해요.”라고 말만 하며 박두만의 충격, 분노, 억울함, 무표정, 초점을 잃은 눈으로 이내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이 영화는 끝나게 된다. <살인의 추억>은 가장 여운이 남는 영화로 꼽을 만큼 영화가 끝나고도 계속 의문과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나는 특히 소녀가 말한 “평범해요.”라고 말하는 장면과 다행히 의식을 찾은 사건의 피해자가 범행했던 그자의 손이 여자 손처럼 부드러웠다고 진술한 장면에서 큰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흔히 범죄자, 살인자라는 사람을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무섭게 생기고 체격이 좋고 거친 사람일 거로는 생각하는 이러한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이렇게 사회적으로 파장이 큰 충격적인 일을 한 범죄자는 평소와 다름없는 평범한 사람이고 오히려 겉으로는 부드럽고 따뜻해 보일지도 모르는 사람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해준다. 특히 마지막에 형사인 박두만의 눈빛은 다시 그 장소에 올지도 모르는 범인을 바라보며 경고하는 듯한 느낌을 주고 싶었던 의도가 있었다고 생각했다. 또 실제로 이 사건에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20년간 복역한 사람과 당시 경찰에게 고문당하고 강압수사를 받은 용의자로 몰리게 된 억울한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공권력의 무력함과 당시 형사들과 수사 과정이 매우 열악했던 상황들도 관객들에게 보여주면서 사회의 세태를 비판하는 지점도 강조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법정에서 <살인의 추억>을 봤냐는 질문에 이춘재는 본인이 이 영화를 봤다고 이야기했고 그냥 영화로만 봤고 특별한 느낌이 들지 않았으며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어떻게 사람이 이토록 잔인할까? 얼마나 이토록 더러울 수 있을까? 억울한 사람들의 마음을 우리는 어떻게 위로해 줄 수 있을까? 이러한 모순과 괴리, 악의 끝은 어디까지인지에 관한 생각을 지금까지도 하게 만드는 유일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포말
윤슬의 바다/백은별/바른북스/2025윤슬의 바다는 개인적으로 아쉬운 소설이었다.첫 번째로 문체가 아쉬웠다. 먼저 영어처럼 된 문장구조가 많았다. 동사를 먼저 말하고 그 뒤에 내용을 덧붙이는데 잘 어울리는 부분도 있었지만, 어색한 부분도 있었다. 또한 ‘-하는 것’,‘-것이다.’ 보다 ‘-하는 거’, ‘-거다.’를 많이 사용하는 것 같아서 어색하게 느껴졌다. 물론 주인공이 청소년이기 때문에 저런 말투를 사용할 수 있지만, 너무 구어체의 느낌이 강해서 책에서 보기에는 어색했다.두 번째로 서사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윤슬과 바다가 사랑에 빠지는데 왜 사랑에 빠졌는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무언가 사건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단순히 ‘-한 점이 좋았다.’ 라고 하며 첫눈에 반했다는 느낌이라서 아쉬웠다. 물론 현실에서는 일어날법한 일이지만, 소설로 보기에는 서사가 부족했다. 소설에서 둘이 사랑에 빠지면 왜 빠졌는지를 모르는 채로 받아들여야 하는 느낌이어서 아쉬웠다. 또한 커플이 2쌍 나오는데 두 커플이 사랑에 빠지게 된 계기가 똑같아 보였다. 로맨스 소설에서 커플의 서사를 설명하지 않는 것이 아쉬웠다.세 번째, 개연성이 아쉬웠다. 초능력이라는 소재는 참신하고 좋았지만, 풀어나가는 능력이 부족했던 것 같다. 소설에서 초능력자는 사람들에게 인식이 좋지 않고, 다들 범죄자 취급을 하는데도 비밀리에 잡아들이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전체적으로 아쉬운 소설이었지만, 간단하게 읽기 좋은 소설이었고, 어린 시절의 사랑에 대해서 풀어내어 순수함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9월
남한산성(김훈《남한산성》)/황동혁/2017영화 <남한산성>은 김훈 작가의 소설인 《남한산성》을 원작으로 한 사극 영화로 병자호란 때의 전반적인 내부, 외부 상황과 삼전도의 굴욕까지의 일들을 보여준다. 조선을 구하기 위해 청의 황제에게 항복해야 한다는 주화파의 최명길과 치욕을 견디며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것이 아닌 마지막까지 항전하고 죽음을 택하자는 척화파 김상헌의 대립과 그 사이에서 쉽게 선택하지 못하는 인조의 모습을 주된 내용으로 이어진다. 나 역시 <남한산성>에서 가장 인상 깊게 봤던 상황, 장면, 갈등, 태도, 대사는 다 최명길과 김상헌의 대립과 인조의 갈등 과정에 있었을 만큼 영화적으로,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대목이다. 특히 영화가 후반부로 가는 중간쯤에 조선의 미래를 위한 살기 위한 길에 대해 최명길과 김상헌이 대립하는 장면에서 하는 대사들에서 내가 인조였다면 둘 중에 무엇 하나 쉽게 고르기 어려웠을 것으로 생각했다.김상헌은 이렇게 말했다. “명길이 말하는 삶은 곧 죽음이 옵니다. 신은 차라리 가벼운 죽음으로 죽음보다 더 무거운 삶을 지탱하려 하옵니다.” 가벼운 죽음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생각해 보면 단순히 사람의 목숨이 가볍다는 의미보다는 당연히 죽을 것을 알고 있음에도 청에 목숨을 비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저항하고 싸우고 죽는다면 삶은 이어지지 못하지만, 사회적 위신과 후대의 기록이 삶을 이어주게 해줄 것이고 간사한 오랑캐에게 죽게 되는 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을 것으로 생각했다. 반면에 최명길은 이렇게 말했다. “죽음은 견딜 수 없고, 치욕은 견딜 수 있사옵니다! 전하, 만 백성과 함께 죽음을 각오하지 마시옵소서.” 현실적으로 나는 이 말에 동의한다. 목숨을 잃게 되는데 자존감과 위신, 체면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러한 것도 살아있어야 의미가 있는 것이지 살지 못하면 후대에 남을 뿐 아무것도 얻는 게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뒤에 김상헌의 말을 듣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다.김상헌은 “한 나라의 군왕이 오랑캐에 맞서 떳떳한 죽음을 맞을지언정 어찌 만 백성이 보는 앞에서 치욕스러운 삶을 구걸하려 하시옵니까 신은 그런 임금은 차마 받들 수도, 지켜볼 수도 없으니, 지금 이 자리에서 신의 목을 베소서….”라고 최명길은 “무엇이 임금이옵니까 오랑캐에 발 밑을 기어서라도 제 나라 백성이 살아서 걸어갈 길을 열어줄 수 있는 자만이 비로소 신하와 백성이.. 마음으로 따를 수 있는 임금이옵니다 지금 신의 목을 먼저 베시고, 부디 전하께서 이 치욕을 ..견뎌주소서….”라고 말했다. 이 대화를 끝으로 결국 인조는 최명길의 말을 따랐고,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청 황제에게 삼궤구고두례를 바쳤으며 김상헌은 자결하고 최명길은 한없이 울었다. 비록 인조는 최명길의 말을 따랐지만 나는 달랐다. 단지 사람이 아니라 한 나라의 왕이기에 후대 사람들의 인식과 가치를 생각해야 했고 오히려 끝까지 맞서 싸워 죽게 되어도 그것을 지켜본 백성들이 오히려 사기가 올라가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을 것으로 생각했다. 사람과 나라의 운명이 바뀔지도 모르는 선택이기에 막상 인조가 된다면 다른 생각들을 할 수 있겠지만 적어도 오늘날을 살아가는 나로서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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