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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입이 없다 그리고 나는 비명을 질러야 한다(I have no mouth, and I must scream)/ 할란 엘리슨/ 아작/ 2014재능이 너무 뛰어난 사람을 보고 우리는 악마의 재능을 지녔다고 부르곤 한다. 바로 할란 엘리슨같은 사람을 말이다. 그는 TV쇼 각본, 시나리오, 에세이, 미디어 비평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1955년 데뷔한 이래 1700여 편의 글을 쓰고, 114권의 책을 쓰거나 편집하고, 12편의 시나리오를 작성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중단편 만으로 휴고상, 에드거상, 네뷸러상, 세계판타지문학상 등 각종 문학상을 60여 차례나 수상하였다. 단순히 많이 쓴 것만이 아닌 깊이가 있는 글을 썼다는 게 할란 엘리슨의 공포스러운 부분이다. 그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사람은 할란 엘리슨이 얼마나 짜증났을까. 내가 아무리 글을 써도 할란 엘리슨이 수상한다고 생각하니 생각만 해도 글을 쓰고 싶은 의욕이 사라지는 것 같다. 책에는 책 제목으로 나온 <나는 입이 없다 그리고 나는 비명을 질러야 한다>를 비롯한 할란 엘리슨의 작품들 중 문학상을 수상한 걸작들을 몇 편 수록되어 있다. 나는 이 작품들 중 '마노로 깎은 메피스토', '나는 입이 없다 그리고 나는 비명을 질러야 한다'를 소개해보려 한다. <마노로 깍은 메피스토>주인공 루디는 흑인이며 남의 정신 속에 들어갈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이다. 그는 이 능력을 별로 탐탁치 않아 했는데, 남의 속마음을 읽었을 때 좋았던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그들의 알고 싶지 않았던 속사정이나 겉으로는 주인공에게 친절하게 대해주었지만 실제로는 인종차별자로 주인공을 무시하고 있었다는 속마음같은 것 말이다. 주인공의 능력탓인지 그의 주변에는 속마음을 나눌만한 친구가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적었는데, 이야기는 그의 친구 앨리슨과 루디의 만남으로 시작된다. 살인범 스패닝을 기소한 지방검사 차장 엘리슨은 루디에게 자신이 스패닝에게 반했으며 스패닝은 사실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말한다. 루디는 엘리슨의 말에 충격을 받는다. 그야 당연했다. 자신이 기소한 살인범에게 반한 걸로 모자라 그가 무죄라고 생각한다니. 루디는 처음엔 스패닝을 만나러 가는 걸 거절하나 유일하다고 할 수 있는 친구이며 동시에 이성으로서 호감을 갖고 있는 엘리슨의 부탁에 결국 스패닝을 만나러 간다. 스패닝을 만난 루디는 충격을 먹는다. 스패닝은 백인에 살인범같지 않은 훤칠한 외모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패닝의 정신 속에 들어간 루디는 사실 본인이 살인마이며, 본인이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본인의 또 다른 부분이 살인을 저질렀다는 걸 알게된다. 루디는 자수하였고, 시간이 되어 본인의 사형을 기다리는 중 루디는 스패닝 또한 본인처럼 남의 정신 속에 들어갈 수 있으며, 사실 루디는 살인범가 아니며 스패닝에 의해 기억이 외곡되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루디는 본인의 능력을 사용하여 루디 자신의 몸에 스패닝의 정신을 남겨두고, 스패닝의 신체로 본인의 정신을 이동시킨다. 그리하여 살인범 스패닝은 루디의 신체로 죽으며, 루디는 엘리슨과 스패닝의 신체로 연인이 된다. 어찌보면 해피엔딩이라고 볼 수 있지만 이 이야기에는 해결되지 못한 수수께끼가 몇 가지 존재한다.1. 루디가 스패닝의 신체로 엘리슨과 연인이 되었다고 하되 이는 진짜로 사랑이 이루어진것인가. 엘리슨은 흑인 루디에게는 엄연히 우정만이 있었을 뿐 애정은 존재하지 않았다. 흑인 루디가 백인 스패닝이 된 것으로 엘리슨과 애정을 나눌 수 있게 된다는게 과연 진짜로 행복한 것인가. 결국 루디는 본인 그대로의 모습으로는 엘리슨에게 고백할 수도 다가갈 수 없었다. 2. 엘리슨이 스패닝이 이전의 스패닝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을 때 어떡할 것인가.엘리슨은 루디의 정신이 들어간 스패닝이 아닌 살인범 스패닝과 사랑에 빠진 것이다. 루디는 엘리슨과 함께 있을 때 스패닝이 어떻게 행동하였는지 알지 못한다. 엘리슨은 지방검사 차장인만큼 머리가 잘 굴러가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이런 위화감을 눈치채지 못할까? 엘리슨은 루디가 정신 속에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몇 안되는 사람이다. 이 위화감과 루디의 능력을 연관짓는다면 엘리슨이 진실을 파악하는데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만약 엘리슨이 위화감을 눈치채더라도 상관없이 스패닝을 사랑한다면 그건 엘리슨이 스패닝의 인격적 부분이 아닌 외면적 부분만 좋아했다는 것이 되어버리고 만다. 루디는 엘리슨을 좋아하는 데엔 본인의 능력을 알면서도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는다는 믿음직한 인격적 측면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그런 엘리슨이 사실 얼굴만 좋다면 내용물은 상관없는 사람이라는 걸 깨닫는다면 꽤나 큰 충격을 먹을 것이다. <나는 입이 없다 그리고 나는 비명을 질러야 한다>위의 내용은 여러가지 생각점이 존재하지만 이 이야기와 비교하면 100%로 해피엔딩이라고 볼 수 있다. 그만큼 이 이야기는 꿈과 희망이 없다. 원래 이 이야기야말로 할란 엘리슨의 성격에 맞는 글이다. 할란 엘리슨은 희망없는 내용의 글을 주로 작성하였다.인간이 거의 다 죽고 유일하게 남은 인간은 5명뿐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인공지능을 지닌 컴퓨터 AM의 장난감이었다. AM은 그들을 개조해 쉽게 죽지 않도록 만들곤 온갖 고문을 시행하였다. 제 3차 세계 대전에 제작된 AM은 어느 날 스스로가 누구인지 알게 되었고, 살인에 대한 온갖 데이터를 활용하며 유일하게 남은 5명을 땅 아래로 데려왔다.인간은 AM에게 지각력을 주었으나 AM은 여전히 갇힌 몸이였다. AM은 생각을 할 수 있으나 그 창조성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인간을 5명 빼고 다 죽였지만 AM은 여전히 돌아다닐 수 없었다. 여전히 갇혀있어야 했다. 그래서 AM은 인간에게 혐오를 품고 복수에 나섰다. AM은 영원히 증오를 상기시키고, 그 증오에 숙달하기 위해 5명의 인간을 살려두었다. 평소처럼 이루어진 AM의 고문은 이번에는 꽤나 길게 지속되었다. 결국 허기를 이기지 못하고 베니가 고리스터를 공격하였고, 테드는 눈밭에 꽂힌 얼음창을 뽑아냈다. 테드는 베니, 고리스터를 죽였고 엘렌은 님독을 죽였다. 그리고 테드는 엘렌을 죽였다. AM은 신이 아니므로 죽은 인간을 되살릴 수 없었다. 그 일이 있고 얼마간 테드는 본인이 AM을 이겼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는 그 생각이 틀렸다는 걸 깨닫는다.그는 분노한 AM에 의해 형태가 일그러졌다. 그는 입이 없지만 비명을 질러야 한다. 앞선 4명과 달리 테드는 앞으로 절대 죽을 일이 없을 것이다. 감시 대상이 줄어들었으니 AM의 감시는 이전보다 엄격해졌을 것이고, 형태 또한 애벌레와 같이 변하여 스스로 죽는 일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또 그는 현재 입이 없으나 비명을 질러야만 한다는 최악의 상황에 놓였다. 이렇게까지 희망없는 엔딩이 있을까. AM에게서 4명을 구해내는데 성공했지만 결국 테드는 자신이 졌다고 말한다. 나는 이를 죽음으로서의 도피는 완전한 승리가 아니라는 걸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몇 명의 사람이 죽음으로서 고통에서 벗어나긴 하였지만 결국 이 세상에 AM이라는 악은 남은 상태였으며, 테드와 같이 남겨진 사람들은 구원받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죽음으로는 남겨진 자들을 구원하지 못한다. 이런 희망없는 어두움, AI에게 끔찍하게 지배당하는 인간이라는 소재덕분에 '나는 입이 없다 그리고 나는 비명을 질러야 한다'는 만화, 게임 라디오 드라마와 같은 다양한 콘텐츠로 제작되었다. 퀄리티가 좋은 작품들이므로 관심이 생긴다면 한 번 찾아봐도 괜찮을 거 같다. 할란 엘리슨의 작품들을 몇 편 읽으면서 나는 할란 엘리슨이 사람의 내면 속 깊은 감정에 대해 굉장히 자세히 알고 있다고 느꼈다. 이 책에 수록된 그의 작품들은 대다수가 내면의 자기 본질과 마주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이야기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 알고 싶어하며, 자신이 누구인지 정의되지 않는 것에 심한 두려움을 느낀다. 그의 작품에서는 자신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이들이 자신을 되찾아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그의 작품들은 매우 어두운 내용의 이야기가 대다수이다. <마노로 깍은 메피스토>는 책에서 제일 첫 번째로 읽게 되는 작품이다. 찝찝한 느낌은 있으나 작중 서술하는 표현과 감정을 살펴보면 이 이야기는 그리 나쁜 결말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해피엔딩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뒤에 이어지는 작품들은 이 작가가 <마노로 깍은 메피스토>를 쓴 작가와 동일 작가인가 헷갈릴 정도로 희망없는 이야기를 전개해나간다. <나는 입이 없다 그리고 나는 비명을 질러야 한다>만 봐도 알 수 있다. 왜 인간의 감정에 민감한 사람이 이렇게 어두운 이야기를 주로 적은 것일까? 책 뒤편의 해설을 살펴보면 할란 엘리슨은 본인의 감정에 솔직하였고 분노와 비평을 소설 속에 적어나갔다고 한다. 그의 작품의 대다수가 어두운 건 그만큼 비평할 게 많았다는 거 아닐까? 실제로 만나면 매우 귀찮은 성격이였을 거 같지만, 이러한 예민함은 소설가로서는 더할 나위없는 소질이라고 생각한다. 할란 엘리슨은 소설계의 문제아였다고 한다. 대학에 입학하고 그의 창작 능력을 무시하는 교수를 두들겨 팼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감정적이며 인간 사회문제에 큰 관심을 지녔었다. 시위에도 참여한 적이 있으며 소설 자료를 얻기 위해 잠입도 해봤다. 이것만으로도 보통 사람은 생각치도 못했을 글쓰기 소재들이 넘쳐나지만 제일 중요한건 그는 글을 잘썼다. 정말 악마의 재능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남들과는 다른 독특한 경험들과 사고방식, 글쓰기의 재능을 가지고 써 낸 그의 소설들이 재미없을리가 없다. 한 번 눈을 붙인 순간 눈을 땔 수가 없을 정도로 순식간에 몰입하게 되며, 다 읽고 나서도 여러 생각에 빠지게 한다.해피엔딩에 질렸다면 가끔씩은 이런 소설에 도전해보는건 어떨까?
고등어조림
만화 재무제표로 보는 회계 7일 만에 끝내기/ 쿠니사다 카츠노리/ 살림/ 2011회계하면 떠오르는 생각'회계 그거 계산하고 그러는거 아니야?''아무래도 경상대출신이 아니면 이해하기 어렵지 않나?'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다. 계산도 해야하고, 용어도 외워야 한다. 지금도 여러 사람들이 회계를 공부한다고 유명 저자들의 책을 사거나 두꺼운 이론책을 산다. 그러나 결국 첫 장의 몇 페이지까지 읽고 그 뒤론 쳐다보지도 않게 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어렵고 재미없기때문이다. 그러나 첫 스타트를 신나게 끊어보면 어떨까? 마치 어릴적 마법천자문을 읽으며 한자를 익혔듯이 재미있는 만화를 읽으며 회계에 입문하는 것이다.그런 점에서 <만화 재무제표로 보는 회계 7일 만에 끝내기>는 노베이스 회계 입문자들에게 아주 좋은 책이다.이 책이 좋은 이유는 여러가지 있지만 크게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바로 스토리와 길이다. - 스토리스토리는 책을 읽을 때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스토리가 재미없거나 부족하다면 아무리 좋아하는 장르의 소설이래도 중간에 질려버리곤 한다. 이 책은 만화책이라 하더라도 주요 내용은 회계를 다루는 만큼 소설장르처럼 깊게 스토리가 짜여지진 않았다. 그러나 갖출건 다 갖췄다.트라우마로 인해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된 주인공, 망한 공장을 되살리기 위해 힘쓰는 밝은 성격의 여주, 여주와 인연이 있는 라이벌 등고전적인 요소지만 스토리에 흥미를 불어넣기엔 충분했다.- 길이보통 경영책을 한 권 빌리면 읽는 데엔 최소 1주라고 보면 된다. 기본 300자를 넘어가며 작은 글씨가 빼곡히 적힌 책은 아무리 읽어도 양이 줄어드는 것 같이 느껴지지가 않는다. 그러나 이 책은 하루 만에 읽을 수 있다. 간단한 내용설명과 만화로 이루어진 구성이기 때문에 집중만 한다면 2시간 내로 완독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빨리 완독할 수 있기때문에 책을 다 읽은 후 더 깊이 알아보고 싶은 내용이 담긴 책을 조사할 수도 있고 이 분야는 나와 안 맞는다 느끼고 빨리 발을 뺄 수도 있다. 독자에게 여러 선택지가 주어질 수가 있는 것이다.처음 회계라는 단어를 들어본 사람, 회계에 대해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도 즐겁게 읽을 수 있단 점에서 정말 좋은 책이라 생각한다.
고등어조림
켈트 신화와 전설(Celtic myth and Legend)/ 찰스 스콰이어/ 황소자리/ 2009켈트 신화에 대해서 들어보았는가? 어릴 적 만화책을 통해서 한 번 쯤은 접해봤을 그리스 로마 신화와 달리 켈트 신화는 관심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들어본 적도 없는 사람이 수두룩할 것이다. 나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고 신화에 푹 빠지며 그리스의 신화 외에도 다른 신화는 무엇이 있을까 찾아보는 도중에 켈트 신화를 알게 되었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생각하며 책을 펼친 나에게 켈트 신화는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그리스 로마 신화와 비슷한 점이 있긴 하나 확실히 다르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내용의 기본 틀이 확립되어 있고, 인물들이 잘 정리되어 있는 편이다. 예를 들어 신들의 왕, 천둥번개의 신하면 바로 제우스가 떠오르며, 이는 변하지 않는 진실이다. 하지만 켈트 신화는 너무 오래된 탓에 여러 종교적 관점과 인간을 신격화하는 내용이 신화에 섞여버리게 되었고, 그래서 켈트 신화 내에서도 게일신화/ 브리튼 신화의 두 분류로 나뉘게 되며 이 나뉜 분류 내에서도 전설이 전파된 지방에 따라 등장인물의 역할, 이름이 바뀌어서 나온다. 예를 들자면 얼스터에서 가장 강력한 요정으로 간주되는 '어냐'와 남부 먼스터의 여왕인 '아너'는 아마 '아누' 또는 '다누'로 숭배되었던 여신과 동일한 인물이었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각각의 지방에서 이름과 역할이 바뀐 채로 등장하게 되었다. 켈트 신화는 마치 구전설화와 같아 확정된 내용이 존재하지 않는다. 옛날 옛적의 자료들을 통해 켈트 신화에 대해서 조사해보려 하여도 그 자료들조차 그 때 전해져오던 켈트 신화를 따라 적은 내용이거나 본인의 사상이 포함된 내용이었기 때문에 어떤 내용이 정답인지를 알 수가 없는 것이다.켈트 신화를 읽으면서 생각한 것은 자연물과 인간의 생필품에 큰 의미를 둔다는 것이었다. 켈트의 영웅담에 조금 관심을 가지고 찾아보면 연어가 자주 등장하는 걸 알 수 있다. 이 책을 읽기 전 켈트 신화에서 연어를 보았을 땐 '연어가 왜 나오지? 영웅에게 도움을 주는 음식인데 굳이 연어를?'하며 의아한 마음이 들었는데, 현재는 그 이유를 조금 알 거 같기도 하다. 켈트 신화에서 연어는 지혜의 산물이다. 미래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열매를 연어가 먹으며 예지 능력을 얻게 되었고, 영웅들은 연어를 잡아먹는 것으로 미래를 예측할 수 있게 된다. 연어는 산란기가 되면 자신이 태어난 하천으로 되돌아 오는데, 오직 연어만이 이러한 행위를 한다. 이 과정을 미래에서 과거로 되돌아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면 과거와 미래의 연관성을 중요시한 켈트인들에게는 연어만큼 지혜로워 보이는 생물이 없었을 것이다. 생필품에 관해서 이야기해보자면 현재의 성배를 예로 들 수 있다. 후대에 기독교의 영향을 받아 등장한 성배는 경이로운 능력을 가진 성물이다. 그러나 그 시초는 가마솥이다. 다그다의 운드리, 브란의 재생의 가마솥, 거인 오귀르브란의 가마솥, 심지어 꽤 유명한 영웅들인 쿠훌린과 아서도 왕과 우두머리로부터 가마솥을 획득한다. 현재 우리의 입장에서 보자면 '신들의 보물이 가마솥이라니 볼품없다'라고 느낄 수도 있지만 그당시 의식주란 매우 중요한 것이었기 때문에 계속해서 음식을 끓일 수 있으며 한 번 요리를 하는 것으로 여러 사람을 먹일 수 있는 가마솥은 생활에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실제로 작중 '로나뷔의 꿈'이야기에 등장하는 '브리튼의 열세 가지 보물'은 검, 바구니, 뿔잔, 수레, 마구, 칼, 가마솥, 숫돌, 옷, 납작한 냄비, 접시, 체스판, 망토로 대다수가 생활에 도움이 되는 도구였음을 알 수 있다.켈트 신화를 읽다보면 그 당시 켈트인의 사상에 대해서 자연스레 알게 된다. 켈트인은 자연물을 숭배하고, 생필품을 중요시하였으며, 부모에 대한 효를 중시하였다. 개인적으로 읽으면서 정말 어렵다고 느낀 책이었다. 계속해서 바뀌는 등장인물들의 이름탓에 누가누군지 파악하는게 힘들었다. 자주 나온 신이였으면 기억할 수 있었으나 짧게 소개하고 지나간 신일 경우엔 정말 누군지 모르겠던 경우도 많다. 그러나 읽은걸 후회하진 않는다. 켈트 신화는 모든 신화의 시작점이자 현재의 우리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이다. 켈트 신화는 '반지의 제왕'과 같은 판타지 소설, 미술, 게임 등 여러 분야에 현재까지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비논리적이지만 자연의 아름다움, 신들의 강인한 정신을 표출하는 이 신화에 판타지 작가들이 푹 빠지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이치이다. 가끔씩 현실에서 벗어나 비현실적인 이야기에 몰두하고 싶을 때, 여러 신화에 대해서 알고 싶을 때, 판타지 소설에 관심이 생겼을 때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고등어조림
이렇게 될 줄 몰랐습니다/재수 글 그림/심플라이프/2020책표지부터 연필로 그린 삽화가 눈길을 사로잡는다.에세이 형식으로 에피소드를 풀어가지만 중간중간 말풍선과 만화가 있어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만화가 재수님과 아내 분(별명:대장님)의 첫만남부터 고양이 세 마리와 함께하는 일상을 다룬다.많은 이야기는 "그들은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이 나지만 이 책은 결혼 이후 생활을 다룬다.그 일상이 소소한데 위트있고 웃음을 주면서도 감동적이다.결혼 이후에도 여전히 달달하고 서로를 아끼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책을 읽으며 발견하고, 결혼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없었는데 결혼 이후도 여전히 삶이 지속된다는 것, 더 큰 행복을 함께 나눈다는 대목에는결혼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삶의 연장선인 결혼 이후의 삶이 궁금한 분들께 추천한다.
라라
팩트풀니스(Factfulness)/한스 로슬링/김영사/2019책의 도입부에는 사실을 묻는 13개의 문제가 나온다. 세계 인구의 다수가 어디에 사는지, 전 세계 1세 아동 중 예방접종을 받은 비율은 몇 퍼센트인지 등에 대한 질문이다.나는 이 문제를 총 4개 맞췄다. 많이 틀린 것에 충격받았지만, 세계 각계 인사들도 많이 틀린 것을 보고 조금 위안을 받았다.어딘가에서 보고 들은 조각난 지식은 실제 세계를 반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고, 많은 것이 바뀌었다.책에서 다소 충격적이었던 것은 인류를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으로 명명하는 것은 더이상 지금의 시대에서 적합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내용이었다.인류의 85%가 소위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범주에 들어가며, 인구의 6%에 해당하는 13개 나라만 여전히 '개발도상국'에 속하기 때문이다.책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이 아닌 네 단계 소득수준으로 구분하는 새로운 범주를 제시하며 사람들이 세계를 오해하는 이유를 10가지 개념을 들어 설명한다.읽고나서 느낀 점은 데이터는 올바르게 작성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작성된 데이터를 해석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는 것이다.책의 개념으로 설명하면, '사실충실성(즉, 많은 것이 변화가 느린 탓에 늘 똑같이 보일 수 있다는 걸 알아보는 것)'을 지니는 것이다. 학자를 목표로 하는 사람으로서, 데이터 이면의 현실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눈을 기르고 싶다.
라라
자본주의 생존 공략집/ 오정훈/ 연필/ 2020글을 시작하기 앞서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사항은 이 책에선 전문적인 경제 지식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책은 작가가 본인이 살아오면서 느낀 점에 대해 말한 것을 엮여서 책으로 집필한 것이다. 그러므로 전문적인 경제 지식, 용어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바로 뒤돌아서 다른 책을 찾아보러 가는 것을 추천한다. 이 책은 좋은 의미로도, 나쁜 의미로도 본인의 생각을 정말 잘 풀어냈다고 할 수 있다. 작가가 투자를 하면서 그때 그때 느낀 경험들을 책에 담아내었기 때문에 만약 작가와 성격이 비슷하거나 작가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이라면 공감하며 읽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에게 공감하지 못한다면 이 책은 여러분에게 별 도움을 주지 못할 것이다. 개인의 경험을 다룬 내용이기 때문에 작가와 공통점이 존재하기 않는다면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게 당연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읽으면서 말의 앞뒤가 모순되는 부분이 있다고 느낀 책이다.작가의 말에서 작가는 본인이 성공한 유명 펀드 매니저도 아니고 막강한 이론으로 무장한 교수도 아니라며 자신을 낮추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작중에서 작가는 투자로 이익을 내지 못한 사람들에 대해 '아쉬운 투자자들'이라고 표현하며 그들을 낮춰보는 태도를 보여준다. 물론 존경하던 사람들이 투자를 성공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씁슬한 마음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정작 본인도 성공한 투자만 한 것이 아닌 수 차례의 투자 실패를 겪은 입장에서 그들에게 공감하는 것이 아닌 아쉽다며 안쓰럽다는듯이 낮춰보는것은 현재의 성공에 취해 과거를 잊어버린 것만 같이 보인다. 만약 이 '아쉬운 투자자들'이 다음 투자에 이득을 보고 본인은 손해를 보는 상황에 처했을 경우, 본인에 대해서 '아쉬운 투자자'였다고 표현하는 것이 아닌 이상 이와 같은 발언은 하면 안 되는 거였다. 이 '아쉬운 투자자들' 발언이 더 충격적이였던 이유는 작가보다 더 큰 성공을 이뤄낸 투자자들도 다른 투자자들에 대해 '아쉽다'와 같은 직설적인 표현을 사용하지는 않았다는 게 한 몫한다. 그들은 자서전에서 투자자들에 대해 다룰 때 '시장이 교체하였으나 과거의 방법을 사용했기 때문에 투자 시장에서 탈락하였다' 혹은 '운이 안 좋았다' 등의 표현을 사용하지 타인의 투자 방식에 대해 '그런 방식으로 투자를 해서 아쉽다'와 같은 표현은 사용하지 않았다. 물론 다른 투자자들의 표현에도 결국 '이러한 방식을 사용한게 아쉽다'와 같은 속마음이 함유된 건 맞다. 다만 이를 직설적으로 표현하는가와 간접적으로 돌려말하는가는 큰 차이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작가의 '아쉬운 투자자들'발언은 다른 투자자들을 존중하지 않은 것으로 보여진다. 그 아쉬운 투자자들 사이에 이전에 존경하던 사람도 있었다는데, 존경하던 이가 투자에 한 번 실패했다고 '아쉽다'라고 표현하는건 많이 충격적인 부분이다. 위의 '아쉬운 투자자들'발언으로 알 수 있듯이 작가는 작중에서 자산이나 투자 성공률로 사람을 나누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모습은 독자의 입장에선 그리 좋게 보이지 않았다.작가는 존경하는 성공한 투자자들에 대해선 '선지자', '그 분', '원탁의 기사' 등.. 마치 입에 담는 것조차 황송한 듯한 모습을 보인다. 심지어 한 존경하는 투자자에 관해선 그의 게시글이 사라지기 전에 글을 프린트 해두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하며, 한 장 밖에 뽑지 못하였기 때문에 종이가 구겨지지 않도록 조심하겠다고 말한다. 물론 성공한 이를 존중하는 건 좋지만 그렇다고 성공하지 못한 사람을 바로 낮춰보는 태도는 개인적으로 좋지 않은 모습이라고 느꼈다. 만약 이 선지자들이 투자에 실패할 경우 그들에 대해서도 바로 아쉬운 투자자가 되었다고 표현할 것인가. 나는 경제 책을 읽으며 경제 지식을 쌓는 것도 있지만 그 사람의 주변인을 대하는 태도와 같은 인격적인 모습도 배워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선 그런 걸 배워갈 수가 없었다.이 책의 가장 큰 문제점은 얻을 수 있는 지식이 극도로 편향되어 있다는 것이다. 작가에 공감하고, 그의 상황에 이입하지 못한다면 얻을 수 있는 정보는 0 이라고 봐도 될 정도이다. 작가는 블로그를 하면서 여러 사람을 만나고 도움을 받는다. 위에서 소개한 존경하는 성공한 투자자들도 다 블로그나 개인적으로 만난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만난 이들이기 때문에 전문적인 지식을 기대하긴 어렵다는 것이다. 작가는 무언가 이야기하기 전, '내가 아는 지인 중에', '제가 아는 그 분'과 같은 식으로 운을 띄우며 이야기 하는데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그래서 이 사람들이 뭐하는 사람들인데?'라는 의문을 지울 수가 없는 것이다. 교수와 같이 전문적으로 투자에 대해서 배운 사람인지 인터넷을 돌아다니며 얻은 지식으로 투자를 하는 사람인지 독자의 입장에서는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진짜 전문적으로 투자에 대해 배운 사람들이고, 신변보호를 위해 일부러 누군지 드러나지 않게 해달라고 부탁했을 수도 있지만 그건 작가와 그 사람만이 아는 내용이지, 책을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알 수가 없다.이 책을 읽고 싶다면 다음과 같은 조건이 필요하다. 1. 과거엔 부유하게 살았으나 시간이 지나며 가난에 시댤려 본 적이 있다. 2. 온라인으로 나에게 큰 도움이 되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3. 나는 정리되지 않은 저자의 생각이 많이 담겨있는 글을 보며 필요한 정보를 뽑아낼 수 있다.나는 개인적으로 이 책이 작가의 블로그 내용을 뭉쳐놓은 것처럼 느껴졌다. 굳이 책으로 내지 않아도 될 거 같았다. 작가와 공감할 수 없겠다고 느껴진다면 계속해서 읽지 말고 바로 다른 책을 찾으러 가는 것을 추천한다. 하지만 작가와 공감할 수 있다면 이보다 인간적인 이야기는 없으므로 앞으로의 삶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고등어조림
반딧불이의 묘(火垂るの墓)/다카하타 이사오/1988평소 지브리 영화를 좋아해서 유명작인 토토로, 하울 뿐만 아니라 남들이 잘 모르는 비주류 영화까지 다 봤다고 자부하는 나였지만, <반딧불이의 묘>는 보지 않고 있었다. 나는 이 영화를 둘러싼 다양한 소문과 여러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를테면, 군국사회 일본을 옹호한다던가, 전쟁 가해국인 일본을 마치 피해자인 것처럼 묘사한다 하는 말들 말이다. 그렇게 <반딧불이의 묘>는 지브리 영화 중 내가 보지 않은 유일한 영화가 되었다.동생이 넷플릭스 추천에 떴다며 이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마침 한가했던 나는 소문으로 접한 영화가 아닌, 영화를 직접 보고 판단해보고 싶었다. 소문대로의 영화인지, 아니면 내가 모르는 무언가 다른 것이 있는지. 그렇게 직접 본 이 영화는 영화를 수식하는 악명과는 너무나 달랐다. 아이러니하게도 영화를 보며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자꾸 떠올랐다.한국전쟁으로 8살에 부모님을 잃은 할아버지는 당시 3살이었던 여동생과 함께 고아가 되었다. 시체더미에 버려진 할아버지의 부모님 시체는 장례를 제대로 못치른채 그대로 불살라졌고, 할아버지는 거처를 찾아 부산에서 광주에 있는 친척집까지 갔다. 힘겹게 간 친척집은 할아버지 남매를 환영하지 않았고, 온갖 구박을 받으며 지내다가 도망쳐나왔다. 그리고, 길거리에서 있다가 고아원에 잡혀갔고, 고아원에서도 도망쳤다는 할아버지한테 들은 이야기가 영화를 보는 내내 오버랩되어 재생되는듯 했다. <반딧불이의 묘>는 제2차 세계대전의 일본의 남매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다. 14살 세이타, 4살 세츠코 남매는 공습으로 인해 어머니를 잃고 친척집에 가서 지내게 된다. 친척은 남매를 냉대하고, 냉대에 견디다 못한 주인공 남매는 피신용 동굴로 거처를 옮긴다. 남매는 어떻게든 살아가려고 애쓰지만 굶주림과 주변 어른들의 냉대, 점점 아파가는 세츠코를 두고 생존은 힘겨운 싸움이 되어간다. 영화를 둘러싼 소문에 보기를 꺼려했지만, 막상 보고 나니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유년 시절을 추억하며 마음 아파할 수 있는 영화였다. 영화를 둘러싼 소문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한 사실여부와 판단을 하기 어렵지만 영화를 보고 난 후 느낀 느낌을 간직하며 이 영화를 기억하고 싶다.
라라
에너미 마인(Enemy Mine)/ 배리 B. 롱이어/ 허블/ 2024손과 발가락이 3개의 두꺼비를 닮은 외계생명체와 포류하게 된다면? 심지어 그 외계생명체와 전쟁중인 관계라면?인간과 외계생명체 드랙이 무인 행성의 소유권을 차지하려고 전쟁을 벌이는 상황 속에서 인간 조종사 데이비지와 드랙 조종사 제리는 외딴 행성의 어떤 섬으로 불시착하게 된다. 서로에 대해 욕설만 퍼붓던 그들이였지만, 섬에 있는 사람들이 본인들뿐이라는 걸 알게 된 후 생존을 위해 일시적 휴전을 맺는다. 여기서 한 번 제리의 생김새에 대해서 설명하고 넘어간다. 제리는 드랙으로 코가 없으며 이빨은 나뉘어져있지 않고 하나로 붙어있다. 손과 발가락은 3개이며 눈과 피부는 황색 계열의 색을 지녔다. 남녀의 구분이 없으며 혼자서 자가수정이 가능해 별도의 개체가 없어도 임신할 수 있다. 데이비지는 제리에 대해 두꺼비를 닮았다고 표현하였다. 단순히 생각해봐도 호감가는 생김새는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에너미 마인은 1985년에 영화화된 적이 있는데, 소설과 달라진 부분도 존재하겠지만 이 영화에 나오는 제리의 모습을 통해 대강 드랙이 어떻게 생긴 생명체인지 알아볼 수 있다. 생김새 이외의 부분에서도 냄새가 난다, 끈적끈적한 점액 등 작중에서는 드랙에 대해 긍정적인 묘사를 거의 해주지 않는다.책을 읽는 도중에는 굳이 이렇게 거부감이 들도록 묘사할 필요가 있나 싶었지만 책을 다 읽고 나니 우정에서 중요한 것은 생김새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요소였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작가는 드랙을 통해서 인간이 추구해야 할 이상적인 모습을 표현하였다고 생각한다. 드랙은 인간과 매우 다른 생김새를 지녔지만 그들이 지닌 의지와 긍지는 존경할만한 것이였다. 드랙은 이름을 따로 짓지 않고 선대로부터 물려받아 사용한다고 한다. 그래서 제리의 가계 제리바의 경우는 5개의 이름을 계속해서 번갈아서 사용하는 중이였다. 데이비지는 이를 듣고 조상들을 기억하기 쉽게 하려고 이름 5개를 번갈아서 사용하냐고 묻는다.제리는 이에 대하여 구별을 위해서라고 답한다. 또 흔히 있는 이름들에 지나지 않으니까 정말 중요한 각자의 행적이 더 돋보이게 된다고 덧붙인다. 드랙은 이렇게 이름의 형태에 집착하기 보다는 개개인의 인생과 업적을 중요시하였다. 그래서 제리의 경우 200명이나 되는 모든 선조의 전기를 외우고 있었다. 우리 인간이 이름으로 자신이 누구인지 규명하는 동안, 드랙은 선조들의 수백 세대를 기억하며 자신이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확고히 정립하고 있었다. 글을 읽으며 나도 우리 집안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생각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더 이상 아무것도 떠올리지 못하여 끝나버렸다. 우리도 드랙과 같이 이름을 번갈아서 사용해야 한다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과거를 존중하며 기억하려하는 태도는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작중 제리는 아이를 낳고 생을 마감하며 데이비지는 제리를 대신하여 제리의 아이 자미스를 키운다. 제리가 죽은 후 데이비지는 절망하며 큰 충격에 빠지게 되는데 이 때 데이비지는 외로움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느끼게 된다.초반부에 서로에게 험담을 하던 때를 생각하면 같은 사람이 맞나 싶지만 말이 통하는 생명체는 서로밖에 없는 상태에서 1년이나 같이 생활하였다는걸 생각하면 그리 이상한 반응도 아니다. 이를 통해 사람에게 말이 통하는 존재의 여부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었다. 자미스와 생활하던 중 섬에 착륙한 비행선에 의해 데이비지는 구조되지만 더 이상 그는 인간 세상에 어울리지 못한다.전쟁이기 때문에? 아니다. 데이비지가 구조될 때 전쟁은 이미 끝난 상태였다. 그는 사람들이 장난스레 말하는 드렉에 대한 험담을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결국 다시 자미스와 함께 섬으로 돌아가 그 곳에서 생활하게 된다. 데이비지는 섬으로 돌아가기 전, 자미스에게 섬에게 생활할 때가 지금보다 편했다고 말한다. 나는 이를 물리적인 편함보단 심리적인 편함이라고 생각한다. 당연히 물리적으로 편한 건 섬보단 지구일 것이다. 먹을 것이라곤 뱀밖에 없고, 겨울에는 온 몸이 시릴 정도의 추위가 도사리는 섬이 지구보다 편할리가 없다.하지만 섬에는 차별이 없다. 생김새에 따라, 종족에 따라, 가치관에 따라 구분하는 것들이 존재하지 않았다. 이게 데이비지가 섬으로 돌아간 이유라고 생각한다. 적과 함께 섬에 표류해, 적과 지내는 중 적에게 감화되어 지구로 돌아간 후에도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 다시 섬으로 돌아온다. 독자 입장에서 보면 동족과 어울리지 못하고 다시 고립한다는 씁쓸한 인생이지만 적어도 데이비지는 행복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데이비지는 섬에서 생활하면서 진정한 이해가 무엇인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서로 차별하지 않고,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며 배우려고 하고, 서로 목숨을 바쳐서라도 상대방을 구하려고 하는 상황. 이 이상적인 상황은 섬에 단 둘만이 표류했기 때문에 이루어질 수 있었던 상황이기도 하다. 어쩌면 데이비지와 제리에겐 단 둘이 고립한 것이 천운의 상황이였던 걸지도 모르겠다. 고립한 덕분에 최고의 우정을 손에 넣었으니까 말이다. 에너미 마인은 미국의 SF잡지 '아이작 아시모프의 SF 매거진' 1979년 9월 호에 중편소설로 수록되면서 처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이 후 작가는 이어지는 이야기를 두 편 더 집필하였고 내가 읽은 2024년본의 경우 이어지는 이야기가 포함된 내용이었다. 1979년도에 이런 내용의 소설이 세상에 나타나다니. 작품은 '대립관계였던 인물들의 화해와 소통'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를 담고 있지만, 이를 그려내는 내용이 정말 완성도가 깊었다고 생각한다. 전쟁이라는 대립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집어넣으니까 대립의 이유에 정당성이 생겼고, 이로 인해 서로 화해하였을 때의 만족감이 더욱 증폭되었다. '대립과 갈등', '화해와 용서'란 현대 시대에서도 충분히 생각해볼 거리를 주는 주제라고 생각한다. 특히 요즘 대혐오 시대에는 더욱 중요한 주제이다. 글의 내용이 많이 길지 않으며 내용도 어렵지 않으므로 꼭 한 번 읽어볼 것을 추천하고 싶다.
고등어조림
- 영화후기 : 남은 인생 10년 (여명(餘命) 10년) / 후지이 미치히토(藤井 道人) / 2023 이 영화는 20대 후반의 여자 주인공 마츠리와 남자 주인공 카즈토의 이야기이다. 20대 후반의 마츠리는 희귀 난치병인 폐동맥고혈압을 진단받고, 앞으로 살아갈 수 있는 시간이 10년 남짓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절망에 빠진 그녀는 스스로를 가족들과 친구들로부터 점점 멀어지지만, 어느 날 우연히 같은 학교 출신의 친구인 카즈토와 우연히 재회하게 된다. 삶을 살아가는 이유를 잃고 방황하던 두 사람은 점차 서로에게 끌리게 되고, 마츠리는 자신의 남은 시간을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의미 있게 보내기로 결심한다. 마츠리의 병은 점점 악화되지만, 그녀는 끝까지 웃음을 잃지 않으려 애쓰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성장하며 사랑과 이별을 배워간다. 그녀는 죽음 앞에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오늘 하루를 진심으로 살아내며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2024년의 어느 겨울, 저녁을 먹고 나서 나는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유튜브로 J-POP을 듣고 있었다.그 중에서 '요네즈 켄시의 레몬'이라는 노래를 듣고 있었는데, 노래 영상에는 남은 인생 10년이라는 영화가 짤막하게 등장했다.대중매체나 한일 문화를 자주 접한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고마츠 나나가 여자 주인공으로 나오고 있었다.후기를 살펴보니 "영화를 보면서 계속 울었다", "삶의 소중함과 사랑에 감동받은 영화"라는 리뷰가 많았고, 나도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졌다.일본의 로맨스 영화를 자주 봤던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보면 '시한부 선고를 받은 주인공과 그의 연인 이야기'는 뻔한 줄거리일수도 있다.어쩌면 인생에서 제일 황금기이자 보석같은 20대의 시기에 마츠리와 카즈토는 삶의 의지를 잃고, 우울한 나날들을 보낸다.그러다 우연히 서로를 만나며 점차 사랑을 하고 삶의 의지를 찾아가는 과정은 매우 인상 깊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사랑은 유한한 것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보았다. 인간의 삶은 유한하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흐른다.그 시간 속에서 우리는 하루를 살아가면서 일을 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사랑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낸다.영화는 삶의 의지를 잃어가던 20대 남녀 이야기에서 서로를 통해 활력을 찾아가는 20대 연인의 사랑 이야기로 전환되고영 카즈토가 무너진다고 생각하겠지만 마츠리를 위해 삶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깊은 감명을 느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한 구절이 생각났다.고대 그리스 시인인 소포크레스는 '내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갈망하던 내일이다.' 라고 말했다.우리에게는 그저 평범한 일상인 하루가 누군가에게는 간절하고 절실한 하루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영화를 통해서 삶을 살아가는 방식과 오늘 하루를 대하는 태도를 되돌아보았다.아직 많이 부족하고 서투르지만 적어도 헛되이 살지 않기 위해서 오늘 주어진 하루에 최선을 다해야겠다.***[관리자]안녕하세요. 제출하신 글에 대한 표절률 검토 결과, GPT 표절률이 39%로 확인되었습니다. 내부 기준에 따라 마일리지 감점(-3점)이 적용되었음을 안내드립니다.독서클럽 글쓰기는 카피킬러 및 GPT킬러 표절검사를 동시 시행하여 검증 후 마일리지 적립을 진행하고 있으니 성실한 작성 부탁드립니다.문의사항은 ☎ 042.629.7692 번호로 연락 부탁드립니다.감사합니다.*▣ 분량 최소 기준: 300자 *분량 미달 시 마일리지 미지급(0점)▣ 평가 기준: 글의 성실성, 창의성▣ 표절: 전체 글 중 30~50% 까지 부분 표절 / 50% 이상 전체 표절 *표절 시 감점처리(-3점) *표절 3회 이상 적발 시, 당해 연도 시상자 선발에서 제외 *시상 후 표절 확인 시 시상 취소***■ 독서클럽 마일리지 적용 기준: https://bookcc.hannam.ac.kr/kor/sub04/menu_02.html
최재우
남은 인생 10년/고시카 루카/모모/2024 마쓰리는 대학생 때 10년 이상 생존한 사람이 없는 불치병에 걸린다. 처음 발병한 이후 줄곧 입원해있다 병원 밖 생활을 할 수 있을 만큼 호전됐고 치료법도 없기에 벚꽃이 내리는 날 가족들과 퇴원을 하는 모습으로 책은 시작한다. 마쓰리는 사나에와 평소 자신의 좋아했던 애니를 코스프레도 하고 동인지에 만화를 그리며 아프기 전에는 용기내지 못했던 것을 마음껏 하며 기쁨을 느낀다. 그래도 가끔씩 같은 병동에 입원해 있던 레이코 언니가 남편과 영영 헤어지며 괴로워하던 마지막 모습을 떠올리며 연애는 자신에게 사치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이 사랑한다고 고맙다고 미안하다고 평소에 말하고 싶었던 초등학교 친구 미유키를 찾아간다. 그리고 그곳 군마에서 초등학교 동창회에 참석했다가 자신이 첫사랑인 가즈토를 만난다. 마쓰리는 기억 하지 못하지만 가즈토의 셔츠 단추를 달아주고 가즈토 자신과는 다르게 무언가에 푹 빠져 사는 그녀에게 빠졌다고 했다. 가즈토는 마쓰리에게 다가오지만 자신에게는 시간이 정해져있다는 것과 가즈토 집에서 여는 다도 클래스에 참여했다가 가즈토가 방황하는 이유가 스무 살 때 종가집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며 떠난 전 여자친구라는 사실을 알게되고 어긋난다. 가즈토는 엄격한 다도 종가집에서 태어났는데 모든 분야에서 천재성을 보였지만 어린 시절 공황장애를 얻게 되고 공부도, 운동도 모든 걸 해봤지만 어느 것에도 갈피를 못 잡고 이제 가업을 물려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마쓰리는 가즈토와 같이 있으면 자신은 없어지고 가즈토만 있는 것 같이 느껴질만큼 그에게 끌렸다. 가즈토도 마쓰리의 말을 듣고 그만 도망치고 가업을 물려받기로 결심하고 도쿄로 와서 마쓰리에게 한 발짝 더 다가온다. 그렇게 둘은 연인이 되서 행복한 생활을 하지만 마쓰리는 레이코 언니를 떠올리며 사탕이 녹기 전까지만 달콤한 맛을 보자는 마음으로 눈물을 머금고 가즈토의 집에서 그가 내려준 차를 마신 후 그에게 자신은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이별을 고한다. 가즈토와 헤어지고 어느 덧 십년이 다 된 시점 마쓰리는 몸이 너무 나빠져 병원에 입원을 하고 죽음을 맞을 준비를 한다. 죽는 순간 마쓰리는 레이코 언니와는 반대로 외로움 속에 홀로 죽는다. 하지만 나는 그때 마쓰리가 오래된 나무처럼 강한 사람으로 마지막을 맞이했다고 느꼈다. 마쓰리가 입원하기 직전 친언니 기쿄의 집에 있을 때 가즈토가 마쓰리의 남은 삶을 함께 하겠다며 찾아온다. 하지만 가즈토가 남은 십년을 어떻게 살아야할지 몰랐던 자신을 구하러 와 준 것처럼 마쓰리 자신도 가즈토를 살려야 한다는 걸 떠올린다. 그렇게 마지막 순간에 마쓰리에게 가면 안된다고 붙잡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후회는 안 하지만, 그렇다고 그건 정답도 아니었다. 인생이란 원래 그런 선택과 답을 쌓아가는 게 아닐까. " 요즘 "내가 죽으려고 생각했던 건"이라는 노래가 자주 들린다. 그 노래처럼 아주 잠깐 뿐인 삶에 대한 아름다움과 고통을 잘 나타낸 소설이라고 느꼈다. 마지막에 마쓰리가 죽음이 가까워오자 자신조차 몰랐던 추악한 모습에 몸부림치는 모습이 단순히 "삶은 축복이야"라는 위로와는 분명 다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책은 독자로 하여금 삶은 축복이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만든다. "내가 죽으려고 생각했던 건"의 끝무렵에 "분명 살아가는 것에 진심이니까" 죽으려고 생각한다는 가사가 나온다. 마쓰리가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기에 삶에 더 진심일 수 있었고 자신의 이름처럼 장례식장에서 사람들은 그녀의 이름처럼 축제 그리고 예쁜 불꽃으로 그녀를 기억한것 아닐까. 나도 삶 자체가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외부로부터 무언가를 받아들이고 감정을 느끼는 것. 그건 살아있는 것들만 할 수 있는 것이고 특권이다. 아마 그러지 못한 삶을 살아본 사람만이 살아있다는 게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 것 같다. 살아도 죽어있는 삶. 시한부를 산다는 건 말로만 들었을 땐 불행 같아도 나에겐 마쓰리의 십년이 꿈같고 부러웠다. 그리고 평소 삶에 지쳐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다는 생각이 컸는데 내가 홀로 서는 거, 될 수 있다면 내가 버팀목이 될 수 있게 기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의 시기마다 때에 맞는 책이 나에게 오는 것 같다. "남은 인생 십년"은 지금은 아무 감정도 느낄 수 없지만 앞으로 내 남은 삶이 얼마나 아름다울지에 대한 기대와 희망 그리고 홀로 서는 연습을 해야 겠다는 울림을 주었다. 내가 뭐라고 말하는 것보다 이 책을 직접 읽어보는 게 사각형 건물 속에만 갇혀 있는 우리에게 창문 밖에는 어떤 풍경이 펼쳐져 있는지 알게 해주는 현실을 탈주하게 해주는 마치 깊게 우러난 차를 마신 것 같은 경험을 시켜준다. 그러면서도 어렵지 않고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친절한 책이어서 더욱 좋았다.
한국인유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