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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와 드레스메이커>는 드레스 입기를 사랑하는 왕자 세바스찬과, 그를 위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옷을 만드는 재봉사 프랜시스의 이야기를 다룬다. 화려한 패션의 세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진정한 자기 자신을 발견해 나가는 두 사람의 꿈과 일, 그리고 사랑에 대한 아름다운 통찰이 담겨 있다.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 솔직히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어린이를 위한 만화책이라는 선입견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린이 도서도 어른에게도 깊은 가르침을 준다고 생각하여 읽게 되었다. 작품 속 세바스찬 왕자는 밤마다 가발을 쓰고 드레스를 입은 채 성벽을 넘는다. 이는 단순히 왕실 생활에서 벗어나려는 일탈이 아니다. 드레스를 입었을 때 비로소 온전한 자기 자신이 되어 빛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며, 한 인간으로서 본연의 모습을 찾으려는 절실한 몸짓이다.책을 읽는 내내 '우리는 자기 자신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타인의 시선이 두려워 내 안의 진실을 발견하지 못하고, 주변의 눈치 때문에 스스로를 옥죄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보게 된다. 사실 남자와 드레스라는 조합을 이질적으로 느꼈던 내 모습이 이 책 앞에서 조금 머쓱해졌다. 편견 때문이라기 보다 어쩌면 숨 쉬듯 당연하게 여겨온 몸에 밴 생각일지도 모른다. 내가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것은 산더미 속에서 보석을 찾는 것만큼 어렵고, 그 보석을 갈고 닦아 빛을 내는 과정 또한 가시밭길이다. 개성이 존중받는 세상이라지만 타인의 시선과 평가는 여전히 두렵워 용기 있게 자신의 길을 걷는 세바스찬을 진심으로 응원하게 되었다.이러한 변화는 현실에서도 일어나고 있다.뉴스에서 본 스페인의 남자 초등학교 교사들은 치마를 입고 교단에 섰다. 치마를 입었다는 이유로 놀림당하는 학생을 보호하기 위해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그들은 옷에 젠더의 구별이 없으며, 아이들이 무엇을 좋아하든 그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몸소 보여주었다. 그들의 실천은 그 자체로 살아있는 교육이었다.역사를 되짚어봐도 치마가 여성의 전유물이었던 적은 없다. 고대 로마 군대는 짧은 치마를 입었고, 스코틀랜드의 민족의상 킬트나 중국의 창파오 역시 남성들이 입던 의복이다. 태양왕 루이 14세는 화려한 하이힐을 신고 각선미를 뽐내며 발레를 즐겼다. 오늘의 편견은 한때 누군가의 일상이었고 당당한 자랑이었다. 결국 편견은 차별을 낳고 나와 타인을 분리하며, 경험하지 못한 것을 단정 짓게 만들어 우리를 틀에 가두곤 한다.이 만화책은 스스로를 드러내도 괜찮다고 안심시킨다. 마지막 장면에서 아버지가 아들을 이해하고 함께 패션쇼 무대에 서는 모습은, 어린이 책이 어른에게도 얼마나 큰 교훈과 깨달음을 줄 수 있는지를 다시금 증명해 보였다.
이 책은 소크라테스를 포함한 아테네 지식인들이 아가톤의 비극 경연 우승을 축하하는 술자리에서 '사랑(에로스)'의 본질에 대해 논하는 대화편이다. 고전 소설이어서 읽을 때 내가 읽던 일반 소설과는 달라서 읽을 때부터 어려움을 겪었다. 이 책을 읽고 내 생각을 말하자면 아리스토파네스는 인간이 원래 하나의 완전한 존재였으나 신들에 의해 둘로 나뉘었으며 사랑은 잃어버린 반쪽을 찾으려는 갈망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그것이 바로 사람이 사랑을 하는 이유라고.나는 그의 주장을 부분적으로는 공감하지만 완전히 공감하기에는 오류가 있다 생각한다. 드라마나 소설, 무엇보다 현실에서 첫눈에 반해 사랑을 하여 평생을 함께하게 되는 연인들을 쉽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2002년에 대한민국이 4강에 진출하게 되었을 때 기뻐 감격하며 옆 사람과 그 기쁨을 만끽하다.그 사람과 눈이 맞아 결혼하게 되는 이야기가 있으니 말이다. 이런 점에서 그의 ‘반쪽 찾기 사랑’이라는 비유는 사랑의 감정을 이해하는데 매우 설득력 있는 설명이다. 하지만 사랑을 단순히 잃어버린 반쪽을 찾는 것이라면 사람은 평생 한 사람하고만의 사랑을 할 수 있어야한다.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연인이 사랑하다 헤어져 새로운 사람과의 사랑을 시작하기도 하니 말이다. 또 그러면서 사람은 성장한다. 전 사람과의 사랑에서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끼고 잘 못 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깨달아 다음번의 사랑에서는 더욱 조심하고 이해하려고 하여 더 나은 내가 되기도 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나는 사랑이 단순히 ‘잃어버린 반쪽을 찾는 것’이라기보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 이 관계를 통해 더 나은 존재로 성장하는 과정이하고 생각한다.이런 점에서 사랑은 이미 정해진 운명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아리스토파네스의 주장은 사랑의 모든 부분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생각한다.
이 책을 읽은 지 오래됐는데도 불구하고 이 글을 쓰는 이유는 그만큼 강력하고 잘 읽었다고 생각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주인공은 엄마와 자신을 때리는 아버지,그리고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에게 맞고 사는 가정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그래서 그런가 주인공은 말투에서도 자신감이 없고 누군가에게 의존적인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답답한 부분이 한 둘이 아니지만 그도 어쩌면 피해자라서 안타깝게만 느껴진다. 주인공은 참다 참다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맞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아버지에게 처음으로 대드는데 그런 모습을 보고 오히려 어머니는 주인공을 말린다. 사실 이 부분도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어머니는 아들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그 반대로 진심으로 마치 잘 못된 행동을 했다는 듯 바라본다. 심지어 나중에는 아버지를 때린 것을 사과하라고 말한다. 사실 엄마가 맞는 것을 본 모습에 말리다가 아버지가 자신을 때려 오히려 폭행을 당하게 되는데 이때 반격하여 아버지의 코를 부러뜨리게 된다. 그래서 이 부분을 사과하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게 주인공은 사과를 하게 되고 시간이 흘러 공부를 못한다면서 부모님은 주인공을 멀리 산속에 있는 공부하는 학원?에 보낸다며 짐을 싸 차로 이동하는데 이때 어머니가 심부름시켜 지갑을 주게 된다. 주인공은 그 지갑을 챙겨 그대로 다른 버스에 올라타 그곳을 벗어난다. 한 마디로 말해 가출한 것이다. 부모님도 처음에는 전화를 몇 통했지만 그게 오래가진 않았다. 그렇게 주인공의 비행청소년 생활이 시작하여 겪는 일들을 이야기 하고 있는 책이다. 여기서 제일 '바르다'라고 생각하는 인물은 경우라는 아이인데, 이 인물이 주인공이 다른 친구와 어울리며 옳지 않는 방법으로 돈을 벌 때 식당에서 일하여 돈을 버는 일을 권유하며 옳은 길로 인도해주는 인물이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도 주인공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경우라는 인물로 대신 전달하는 부분이 속시원했다. 이 책은 청소년이 성장하면서 성숙해지는 어른에 대해 말하고 있는 거 같았다. 그래서 청소년이 읽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가장 마음에 들었던 문장은 마지막에 이 글을 마치면서 주인공이 했던 말이다. 나는 나이를 먹어도 지혜나 연륜 같은 건 터득하지 못하고 외로움과 아득함만 깨닫고 있었다. 보조인과 판사는 내게 죄가 없다고 판결했지만 나만은 알고 있었다. 내가 진 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리라는 것을. 좁은 캐리어 안에 웅크린 자세로 굳어가던 A가 화석처럼 내 영혼에 새겨져 있었으니까. 그래서 지금도 추위에 시달리며 내가 외면한 A가 줄곧 앓고 있는 것이다. 오랜 시간 동안 누군가를 아끼고 사랑하는 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후회를 곱씹는 일에만 성실히 복무했다. 아무것도 갈구하지 않는 것으로 죄책감을 덜어내고 싶었던 것이다. 삶에 애책을 가지지 않는 소심한 방식으로 사과를 건네고 싶었다. 그러나 이런 건 경우가 전혀 바라지 않는 방식일 테지.부디 한번 더 기회가 주어지기를. 햇볕을 쬐면 정화되기를. 경우 없는 세상에서도.마지막 '경우 없는 세상에서도' 라는 말은 비록 경우 없는 세계지만 성숙한 어른에 한 발짝 가까워 진다 라는 의미인 거 같다고 느꼈다.이 책은 주인공의 1인칭 시점에서 서술된다는 의미에서 더욱 내가 주인공이 된 것 처럼 책을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다.
절창/구병모/문학동네/2025사실 구병모 작가의 문장들은 내가 이해하기에 어려운 면이 있었다. 책을 많이 읽지 않았던 나로서는 이 책에서 나오는 다양한 책들의 인용들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았었다. 여기서 느낄 수 있었던 점은 아는 만큼 보인다고 책을 많이 읽으라 했던 어른들의 말을 이해할 수가 있었다. 전부터 책은 많이 읽을수록 좋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렇게 책에 관심이 많이 생긴 이후 직접적으로 와닿은 것은 처음이었다. 책에서 ‘읽기’에 대해 강조하는데 내가 아는 만큼, 내가 아는 상식선에서의 질문이 있고 또 다른 답이 있었다. 인어공주를 예시로 주인공은 처음에 드는 질문으로 그림으로든 글씨로든 내가 왕자를 구해준 사람이라는 걸 왜 안 알렸을까? 라면 다른 답으로는 그 시대에는, 그 세계선으로는 인어와 인간에게 글씨나 그림으로 전달할 만한 의사소통이 다를 수도 있을 거라는 것이었다. 또 남자 주인공이 왜 이런 지 모르겠어요 저와 맞지않아요 라는 청소년들의 질문에 주인공은 책을 읽기 전 책의 내용이 뭔지 키워드로 다 알려주는 시대에 바이러스에 내성이 생기기 위해서는 바이러스를 몸에 주입하듯 좋아하지 않는 것도, 원하지 않는 것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만 보려한다면 내 스펙트럼은 거기서 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로맨스이면서도 독자들에게 수많은 깨달음을 준다. 로맨스에 비중을 두면서도 ’읽기‘ 라는데에 초점을 맞춰 내가 알고있는 상식이 여기가 다인지, 놓치고 있는 것이 있는 건 아닌지 우리는 무엇을 알고 무엇을 질문해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절창'이라는 책은 위에 말했듯이 ’읽기‘에 초점을 두긴 하지만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 사이에 초점이 있기도 하였다. 한 사람은 한 권의 책으로. 책을 파악하고 이해하듯 사람도 마찬가지라는 거였다. 근데 그 사람이 도덕적이지 않은 일을 하고 있다면 사회의 통념상 다른 일을 하고 있다면. 그 사람을 이해했을 때 나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 사람의 서사를 받아들였을 때의 죄책감은 어떻게 되는 걸까. 무엇이 맞는지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할 것이다. 사람이란 수많은 사연이 있고 용서받을 수 없는 짓이 있겠지만 각각의 이유란 정말 다양한 것이었다. 무엇을 하든 질문을 하는 것. 곧이곧대로 믿지 않고 한 번 더 생각하는 것. 내가 누군지, 내가 하려는게 맞는지, 난 뭘 하며 살아야 하는지 알아야 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혐관 로맨스 좋아하면 무조건 절창 읽자..
유령해마/문목하/아작/2021해마는 미래시대의 사람들에게 편리함을 주는 기계이다. 해마는 어디든지 갈 수 있고 어디든지 연결할 수 있다. 해마는 무조건 임무를 완수해야 하는 규칙을 가지고 있는데 명령을 이행하지 않는다면 그건 해마라 할 수 없다. 해마는 거짓을 말할 수도 위법을 저지를 수도 없다. 해마는 선천적으로 그렇게 태어났다. 그들에겐 자신들의 세계인 중앙과 인간들의 세계인 행성 세계를 번갈아 가며 지낸다. 12시간을 행성 세계에서 일을 하고 중앙으로 돌아가 자신의 백업과 체인지 한다. 그 백업은 다시 12시간을 일을 하고 자신의 백업과 체인지 한다. 여기서 주인공 비파는 자신이 해마체의 주인이라 생각했다. 12시간동안의 자신의 기억을 전달받는 백업을 분신이라 생각했을거다. 하지만 비파는 비파고 백업도 비파였다. 과거가 아닌 현재를 살고있는 내가 현실이듯 비파도 백업이 아닌 자신이 현실이라고 느껴졌을 것이다. 이 책에서 비파는 백업과 많은 얘기를 하였는데 결국엔 ‘나‘는 나이기에 혼잣말로 자신과 싸운것이었다. 내적갈등이란 말이 있듯이 내 안에서 다양한 목소리들이 나올 때가 있다. 이 감정도 저 감정도 전부 나 한사람한테서 나온 것이지만 결국 한 결정만이 승리하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감정들이 쓸모없었던 것은 아니다. 우리는 자신 마음 안에서 나오는 목소리들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해마는 바깥에서 오는 질문에 답을 할 뿐이지 자신이 질문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점점 비파는 자신 안에서 끊임없이 질문을 하였고 낙담하고 실망을 하며 답을 내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게 비파는 해마가 할 수 없던 감정을 느끼고 해마의 삶에 없던 누군가를 구하기 위한 단순한 희생이 아닌 진정으로 마음으로 느낀 희생을 할 수 있었다. 자신을 희생하며 자신을 구할 수 있었다. 우리도 끊임없이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야 한다. 비파는 한 인간에게 특별함을 느끼며 정상에서 멀어져갔다. 인간은 자신의 삶이 유일하지만 4000만명의 인생을 다 알고 있는 비파는 그저 그랬다. 인간 ’이은하‘의 삶은 비극으로 가득찼지만 비파는 이은하의 삶이 다른 사람의 삶보다 무겁거나 가볍다고 느끼지 않았다. 이은하가 중요한 존재인건 이은하라서가 아닌 사람이기 때문이라 생각했었다. 첫만남이 조금 특이했던 그런 사람. 하지만 비파의 삶에서 이은하는 곧 임무고 열쇠였고 비파의 역경을 견디게 해준 사람이었다. 오직 비파많이 그렇게 생각했지만 사람이 아닌 존재가 그렇게 생각할 수는 없었다. 해마는 모든 사람이 동일했기에 그렇다. 누군가에게 화를 내고 배신감이 느껴지는 해마는 있을 수 없었다. 그런 해마에게 특별함이 생겼다는 것이 희극이자 비극이었다. 자신이 미쳐가는 와중에도 누군가를 생각하는것이 불가항력이 되었을 때 가장 순수한 희생을 볼 수 있었다.
모든 사람에 대한 이론/이하진/열림원/2024세상은 잊는 사람, 잊혀지는 사람 그리고 잊혀진 사람이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참사가 일어날 때마다 사람들은 누구의 탓이다 , 누구의 무능이다 화를 내면서 결국엔 언제 그랬냐는 듯이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럼 그 참사에 남겨진 이들은 사람들이 빠져나간 자리에 공허히 서있을 뿐이다. 오히려 그들이 내야할 소리를 뺏긴 채 동정당하며 자신들은 참사에 무관심한 사람들과는 다르다고, 위하는 척하며 그 우월함에 빠진 사람들을 지켜보며 살아간다. 이 책은 죽음에 무관심하며 자신은 그럴 일 없다고, 언제적 얘기를 하냐는 사람들을. 이런 사람들이 사는 세상은 구원할 가치가 있을까에 대해 얘기한다. 주인공인 '미르'는 모든 사람을 구하는 것보다 오직 친구를 살리기 위해 연구원이 된다. 자신이 친구를 위험에 빠뜨렸다는 죄책감을 가지고 인생을 걸어 살릴 방법을 찾는다. 책에서는 크리스마스의 비극이라는 참사가 일어났는데 후대에선 과거의 일, 모르는 일, 자신과는 상관 없는 일이라 생각한다. 인간들은 바뀌는게 없고 배운게 없었다. 교란이라 불리는 재앙이 여전히 인류를 덮치고 있는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무관심했다. 자신에게는 그런 재앙이 오지 않을거 라는 하찮은 자신감이었다. 하지만 그 비극을 겪은 피해자와 유가족들은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저 기억밖에 못 하더라도 살아서 기억만 한다면 잊혀지지 않게 할 수 있었다. 책 속 인물들은 결국 기억하는 사람들이 모여 또 다른 비극을 막을 수 있었는데 작가는 우리는 수많은 비극이 일어날 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다른 비극이 오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지, 그들을 기억하고 있는지 묻고 있다.우리는 과연 세월호, 대구지하철 같은 참사를 기억하고 있는가? 더 넘어가 위안부 할머니들과 국가유공자 분들을 기억하는가?를 묻고 싶다. 점점 잊혀져가는 기억들 속에서도 그분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이야기를 알리고 있다. '죽음은 그렇게도 무거웠는데, 그 이후에 이어지는 삶은 이렇게나 가벼이 여겨지고 있었다'라는 문장처럼 죽음에도 이토록 가벼운데 살아남은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더 가벼울까에 대해 생각해 보면 그동안 몰랐던, 알았어도 모르는 척을 했던 시절들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무관심 속에서도, 희망이 없어 보이던 순간에도 희망을 놓치않았던 이들에 대해 생각하며 우리도 단 하나의 가능성이라도 가지고 나아가자는 말을 하고 싶다.
꿰맨 눈의 마을/ 조예은/ 자음과 모음/ 2023이 책의 배경은 몸에 눈, 코, 입 등이 더 생기는 바이러스가 생겨나고, 감염자는 난폭해지며, 사람들을 공격한다 이로 인해 세상이 멸망하고 감염되지 않은 사람들은 타운이라는 곳에 모여살고 있으며, 주인공인 이교는 등에 눈을 달고 태어난다. 타운에 규칙에 따라 밖으로 추방되어야 했지만 눈이 흉터인 것 처럼 보여 걸리지 않았고 그렇게 눈을 꿰매며 숨기고 살아가던 도중 친구가 목에 입이 생겨 밖으로 추방되게 되면서 타운의 규칙의 의문을 가지는 것으로 시작한다.이 책은 꿰맨 눈을 가지고 있는 주인공이 가장 정확히 보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는 것 같다. 바깥 세상이 멸망한 줄 알았으나 사실 몸에 이목구비가 생긴 신인류들이 살아가고 있었으며, 그걸 인지한 것은 주인공 혼자 였기 때문이다. 마치 살아가면서 내가 알고 있는 정보가 조금 밖에 되지 않지만, 두려움으로 인해 정보를 부풀리며, 때로는 아는 척하는 모습이 생각났다. 책의 마지막은 열린 결말로 끝나지만 희망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 주인공과 친구가 만나서 바깥 세상에서 살아갈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읽으면서 재미있고 생각하며 읽을 수 있는 책이 였던 것 같다.
프로젝트 헤일메리/필 로드&크리스토퍼 밀러/2026 헤일메리는 미식축구에서 경기 종료 직전, 성공 확률이 매우 낮지만 승리를 위해 기적을 바라며 던지는 긴 패스를 말한다이러한 뜻과 같이"프로젝트 헤일메리"속의 인류는 멸망한 위기에 놓여있다. 아스트로파지라는 우주 미생물이 태양의 밝기를지속적으로 감소시켜 이대로 가다가는 약 30년뒤엔 지구는 인류가 살기에 적절한 환경이 안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주인공 그레이스는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유일하게 밝기가 줄어들지 않는 항성계 타우세티로 가는데... 헤일메리를 기대하고 보러간 것은 아니였다. 그져 오랜만에 나온 마션, 인터스텔라와 같은 SF영화 이상 이하도 아니였지만영화를 보는 약 3시간의 시간동안 몇번을 입을 벌리고 봤는지 모르겠다. 감히 CG의 즐거움은 인터스텔라를 뛰어넘었다고 생각한다.여운이 오래남았는지 모두가 나간 이후의 극장에서 한참동안 엔딩 크레딧을 끝까지 보고 나왔다. 하나 즐거웠던건 영화사가 끝까지 엔딩 크레딧을 본 사람들을 위해 아주 작은 이스터에그를 하나 넣어뒀다는것이다. 참 여러므로 즐거운 경험이였다.인터스텔라를 봤던 사람이라면 무난하게 재미있게 볼 것 같은 영화프로젝트 헤일메리 시험기간 한참 머리 아플때 분의기 환기용으로 한번보고오는건 어떨까? 후회는 하지 않을것이다.
변신/ 프란츠 카프카/문학동/2005어렸을 때 아무 생각 없이 변신이라는 멋있어 보이는 제목에 글을 읽으려 하다가 중간에 이해가 안 돼 포기했던 책을 이번에 다시 읽어 보았다.책의 줄거리를 잠시 말하자면 가족을 위해 일을 하던 그레고르가 어느날 아침 일어났을 때 그는 침대 속에서 한 마리의 흉측한 갑충으로 변해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이후 가족들은 그를 포며 기겁하며 그를 멀리하게 되고, 그렇게 가족들의 멸시를 받던 그레고르는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나는 가족들의 행동이 너무하다고 생각하는 한편 그레고르의 태도 또한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레고르는 불상하다. 가족들을 위해 일만하던 그가 벌레로 변해 버렸다는 이유로 가족들은 그를 멀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그레고르가 아쉽다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일만하던 그가 벌레가 된 것은 어쩌면 그가 이 일이라는 것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벌레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왜 벌레 였을까? 가끔씩 살다보면 "아 저 벌레 부럽다. 차라리 내가 저 벌레 였다면"라는 생각을 하곤한다. 진짜 벌레가 부러운것은 아니지만 문득 벌레 처럼 그냥 본능 또는 기어다니며 내가 갈 수 있는 만큼만 다니는 그런 삶을 원하며 중얼거리는 것이다. 그런것처럼 그레고르도 그런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내 인생에 대해 생각해볼수 있던 책이였던것 같다.
지구에서 한아뿐 / 정세랑 / 난다 / 2019분명 오랫동안 봐온 그 얼굴 그대로인데,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만 같은 그런 느낌.성격, 나를 대하는 태도, 습관, 좋아하는 음식. 그 모든 게 달라진 남자친구.사실 이 책을 보면서 주인공(한아)이 결국엔 자기를 아껴주고 좋아해주는 사람을 만나서 너무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한아는 그렇게 안 보이지만 굉장히 다정한 사람이다. 동물을 아끼고, 지구를 아끼고, 버려지는 옷들조차 아끼는.그런 사람을 범우주적인 차원으로 사랑하는 경민의 이야기가 어찌 아름답지 않을 수 있을까."네가 내 여행이잖아, 잊지 마."혼자 있을 때 이 문장을 읽었다면 분명 소리를 질렀을 것이다.나를 보기 위해 2만 광년을 달려온 외계인이 이런 말을 하다니.이 문장 이외에도 로맨틱한 말이 참 많이 등장한다. 네가 없는 지구가 마음에 들지 모르겠다던가 경민때문에 경민의 행성 사람들이 모두 한아의 꿈을 꿨다는 문장이 특히 간질간질한 느낌이 들었다. 이 책은 친구들과의 교환독서를 목적으로 구매했다.장르가 SF 로맨스인지도 모르고 읽기 시작했는데ㅡ친구의 이름이 한아였기에 선택한 도서였다ㅡ, 생각보다 너무 재미있게 읽었다.'순애'라는 단어를 책 한 권으로 풀어둔 느낌이라 푸슬한 웃음을 지으며 페이지를 넘겼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빅터 프랭클/청아출판사/2020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저자의 수용소의 체험과 그 속에서의 심리적 변화를 다루며, 2부는 로고테라피의 기본개념을 이론적으로 설명하고, 3부는 로고테라피 치료가 어떻게 실제 치료로 적용되는지를 다룬다. 특히 1부에서 인상깊었던 점은 저자가 절망적인 상황을 단순히 묘사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 안에서도 인간이 어떻게 ‘의미’를 발견하고 살아갈 수 있는가를 끊임없이 탐구한다는 것이다. 그는 독자로 하여금 오히려 용기와 희망을 준다. 프랭클은 말한다. “시련을 당하는 중에도 자신이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단 한 사람이라는 사실에 감사해야 한다. 어느 누구도 그를 시련으로부터 구해 낼 수 없고, 대신 고통을 짊어질 수도 없다.” 그는 수용소라는 절망의 공간에서도 스스로를 ‘성자’로 이끄는 이들이 있다고 말한다. 인간은 시련과 비극을 극복해내는 과정을 통해 비로소 가면을 벗고 ‘성자’ 혹은 ‘돼지’로 나뉜다. 즉, 고통 자체가 인간을 성자나 돼지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고통을 어떤 태도로 견디는가가 인간의 품격을 결정한다. 시련을 피할 수 없다면 그것을 의미로 바꾸어 내는 것이야 말로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필요한 삶의 태도이다. 혹시 인생의 목적이 없다고 느껴져 공허함과 우울감을 느끼고 있는가? "나는 왜,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가?" 이 질문에 진심으로 답할 때, 우리는 비로소 삶의 의미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 김영민 / 어크로스 / 2023김영민 작가님의 이 작품은 죽음이 단어 그대로 마냥 나쁜 것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죽음은 남은 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보다 성심껏 선택할 수 있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한다. 만약 내가 내일 죽는다면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낼까? 생각해 보게 된다. 아마 타인의 시선을 off 하고 자기 자신에 최대한 집중해 귀를 기울이지 않을까 그리고 과거에 후회하거나 미련 남지 않을 윤택한 선택을 할 것이다. 이 작품은 매일을 이렇게 살아가 보라고 한다. 또 다른 장에서 공감되었던 부분은 아무리 가족이라도 지켜야 할 선이 있다고 현대 사회에서는 어른들의 말을 무조건적으로 듣는 게 능사는 아니라고 현재에 맞는 솔루션을 제공해 준다. 물론 이 내용에 모두 공감하지는 않았지만 사람마다 삶의 철학, 방향 등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런 주제들을 책에 내놓았다는 것이 생각할 거리가 많은 책이라는 생각을 했다. 또 놀랐던 것은 이 책의 제목에는 심각하게 죽음이라는 내용만 다룰 것 같지만 죽음 관련 주제는 한 챕터밖에 없다 나머지는 죽음이 찾아왔을 때를 생각하며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이야기 해준다.